독서평 : 우미인초 (나쓰메 소세키, 현암사)
또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우연히 소개 글을 접하고 흥미가 생겼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변화하던 일본 사회에서 잘 나가는 한 남자가, 은사의 딸과 신여성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소개였습니다. 줄거리 소개를 중간 까지만 읽다가, 스포일러를 당하느니 원작을 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단순한 삼각관계 치정극이 아니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스포일러 주의
- 일단, 100년도 전에 쓰여진 작품이므로 촌스러운 구석이 분명히 있다고 하겠습니다.
- 특히 작가가 직접 인물을 설명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마치 무성영화에서 변사가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 또 종장에는 특정 인물이 갑자기 무슨 신이라도 된 듯한 말투로, 너는 이런저런 일을 했기에 잘못이었다, 네 죄를 알렷다, 는 식으로 나오는 통에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 잘못을 꾸짖는 논리 자체는 저도 동의하지만, 이런 식의 대화가 있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야기에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 또 자살입니다.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쪽팔림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 저는 소세키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 자살은 비겁한 회피일 뿐이고 그 비겁함을 영구히 불변의 것으로 만드는 최악의 방법입니다.
- 어쩐 일인지, 등장인물들은 자살로 인한 이별에도 별다른 슬픔도, 멘탈붕괴도 없습니다. 그저 갈 사람이 갔다는 것인지...
- 슬픔이 없을 리가 있을까요. 앞날이 창창한 청춘이 삶을 저버렸는데...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런 심리를 묘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작가가 자살을 바라보는 관점이 별거 아니라는 식이니까 그런거겠죠.
- 오노라는 인물에 대해서 말해야겠습니다. 우물쭈물하고 잔머리만 잘 돌아가는 병신같은 캐릭터입니다.
- 소세키의 작품에 유독 이런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은데, 저만의 착각일까요?
-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해서 질질 끌려가면서도 속셈은 악한 스타일입니다.
- 오래 전 신세졌던 은사의 딸이 자신을 신랑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면서 그 상황을 방치합니다.
- 주변 인물들도 다 고리타분한 마인드의 사람들이어서,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노 본인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 자체를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지도 못하는 찌질함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 오노는 이미 도쿄에서 신여성과 연애감정을 갖고 있고 그 여성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그것도 전적으로 사랑인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신여성이 부유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도 매우 별로입니다.
- 진실이 무엇이든, 신여성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확실하게 나서야 하는데 은사의 딸이 맘에 걸려 우물쭈물하고 있습니다.
- 은사님과 그 딸이 도쿄에 나타나서 관계를 확실히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파국이 시작되는데...
- 당당하게 거절하지도 못하고, 상황을 잘 모르는 친구에게 거절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정말 최악의 순간입니다.
- 그것보다 더 최악인 것은, 거절의 뜻이 전달되고 알려지면서 만류하러 찾아오는 사람에게 쭈구리처럼 굴복하는 장면입니다.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고, 그냥 네 잘못했습니다,하고 입장을 바꾸는 모습에 기가 찼습니다.
- 이런 남자와 결혼할 여성이 불쌍합니다. 은사의 딸이나 신여성, 어느 쪽이라도 이런 남자와 얽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가 생각하는 진짜 빌런은 고노의 새엄마인데요. 의붓아들인 고노의 재산을 탐낼 뿐, 고노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 작가는 이 여성을 고의적으로 수수께끼여인이라고 부릅니다.
- 어떻게하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재산을 가져올 수 있을까 궁리만 하는 한심한 사람입니다.
- 그런 심중을 훤히 꿰뚫고 있는 고노는, 재산을 모두 주고 자신은 중이 되어 떠나겠다며 새엄마를 당황하게 합니다.
- 고노는 새엄마가 자신을 그저 인간적으로 대해주기를 바랄 뿐이지만...
- 새엄마가 왜 잘못을 했는지 조목조목 말해주는 장면은 좀 과잉이다 싶습니다만, 그 내용은 정확합니다.
- 혹시 이 부분의 내용이 낯설게 느껴지신다면, 여러번 음미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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