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있는 삶을 살지 말 것

2026. 9. 5. 지금 읽고 있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는 너무나 좋은 책이고, 여기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은 모두 귀감이 되는 삶의 모델들이다. 그들의 삶은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킨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알차게 살아내었다. 그들은 자신을 이끄는 불꽃을 쫓아가며 매진하였고, 돈은 그 삶을 위한 연료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문득 생생한 삶의 반대가 궁금해졌다. 실패해버린 삶, 죽은채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그런 사람을 주제로 연구를 할 사람은 없었겠지. 다행이 그런 쪽이라면 픽션에서 다뤄주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한 단편 <가슴 아픈 사건>을 소개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제임스 더피는 그야말로 무색무취한 사람이다. 친구도 없고 틀에 박힌 삶을 쳇바퀴처럼 반복하는 사람이다. 평탄하고 모험도 없는 삶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먼저 접근하여 친해진 어떤 부인과 관계가 깊어지게 되었다. 둘이서만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나누다가 어느 날 그녀가 그의 뺨에 애정을 담아 손을 대는 일이 있었다. 그 일에 놀란 더피는 지레 겁먹어 그녀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그녀는 상처를 받고 떠나간다. 몇년 후 그녀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접하고. 자신이 관계를 정리한 후 그녀의 삶이 망가졌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 더피는 일단 자기 합리화부터 시작한다. 그런 여자였다니 역시 내가 관계를 정리하길 잘한거였네. 그러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외로움에 휩싸이면서 작품은 끝난다. 나는 주인공이 부인에게 결별을 선언할 때부터 욕을 하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쌍욕을 날리면서 책을 덮었다. 기껏 사랑을 찾았는데 하찮은 이유로 비겁하게 사랑을 밀쳐내다니. 불륜일 수도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았던 거였으면서 관계가 깊어지자 도망치는 꼬라지란. 게다가 죽어버린 사람을 비난함으로서 도덕적인 면피를 하려는 그 치졸한 마음. 나는 죽어있는 삶을 사는 더피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것은 ...

돈은 연료일 뿐이다

2026. 9. 4. 짐 콜린스의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읽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표현을 발견했다. 돈은 연료일 뿐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러한 생각을 정리한 글 을 써두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문장처럼 나의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문장이 오랫동안 나의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짐 콜린스는 이 책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분석하여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특히 두 사람의 인생을 짝지어 대조해주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즐겁다. 

Serendipity

2026. 8. 19. 집중력이 부족해서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경우가 많다. A라는 책을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면 B라는 책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동시에 최대 5권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일부러 같은 시기에 읽으려고 마음먹고 책을 정하지는 않지만, 우연히도 서로 다른 책에서 같은 메시지를 얻게 될 때가 있다. 재미있는 우연이고, 나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 라이언 홀리데이의 <돌파력>과 장 폴 게티의 <전지적 부자 시점>을 동시에 읽고 있는데, 두 책에서 같은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부정적인 태도를 경계하라. 아무리 나쁜 상황에서라도 돌파구를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절망해서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너무 뻔한 말인가? 원래 진리는 단순하다. 그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은 가치가 없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삶 속에서 실현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세운 원칙을 내가 지키는 일

2026. 8. 14. 요즘 트레이딩에 흥미를 느껴 공부를 하고 있다. 단순히 주식을 사고 파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이것이 지식의 영역보다는 메타인지와 규율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올바른 트레이딩을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된 플레이를 해야 한다. 어느 지점에서 매수를 할지, 매수 규모는 얼만큼으로 정할지, 그리고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어떻게 손절하여 큰 손실을 예방할지를 미리 정해야 한다. 그런데 실전은 다르다. 내 트레이딩 일지를 기록하는 노트는 멀리 있고 핸드폰은 내 손안에 있다. 주식 어플의 호가창은 매 초마다 새로운 숫자를 내놓는 통에 계획에도 없던 매수 버튼을 누르는 것도 다반사다. 어느새 나는 다시 마구잡이로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고 계획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데도 매도는 커녕 물타기를 하고 있다. 내가 세운 원칙인데도 이렇게 지키기가 어렵다. 실망스럽지만, 다시 시작할 것이다. 계획을 세울 것이고 그 계획을 지킬 것이다. 매매일지를 기록하고 실패한 매매를 분석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성적은 알아서 따라온다고 믿는다.

아삐와

2026. 7. 21. 17개월 아들이 엄마, 아빠에 이어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삐와"이다. 나는 처음에 <아빠 미워>인 줄 알고 왜 그럴까 고민을 했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그 말이 사실은 <아빠 이리와>임을 알게 되었다. 말로 다할 수 없을만큼 기쁘다. 나도 아기 때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했을까?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기억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가보면, 아버지는 일하러 간다며 집에 자주 없었고, 내가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무기력한 삶을 사는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었다. 내 아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변화해 갈 것이다. 어쩌면 청소년기에는 나를 미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들아,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단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아버지가 나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부자가 아무리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내 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아들을 사랑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사랑도 재발견한다.

오펜하이머

2026. 7. 9. 카이 버드, 마틴 셔윈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이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원작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작품이든 책으로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에, 이번에도 영화보다는 책을 먼저 펼쳤다. 오펜하이머는 원래 부잣집 아들이고 천재였다. 그는 매우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관계에도 서툴러 친구도 많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그의 청소년기를 자세히 묘사하는데,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천재 소년일지라도 정신적으로는 극도로 피폐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그 시절 오펜하이머의 기행을 보면 아슬아슬하다. 인생을 망쳐버릴 뻔했던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오펜하이머를 구원한 것은 독서였다. 그는 지식인이었고, 다독가였다. 정신과 의사의 도움없이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독서의 힘이었다. 정신적으로 안정되자 그는 온화한 성격으로 변화하였고, 학자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치즘에 대항한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핵무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그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일류 지도자로 성장한다. 나 또한 정서적인 불안이 극심했던 시기를 겪었기에 오펜하이머의 경험이 낯설지 않았다. 나 또한 엄청난 독서를 통해 힘든 시기를 이겨낸 경험이 있어서 반가웠다. 아직도 가끔 불현듯 불안은 되찾아온다. 오펜하이머 같은 사람도 같은 불안을 극복해야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에게 용기를 준다. 오펜하이머의 불안 치료법은 걷는 것이었다고 한다. 나도 지금 일어서 걸어야겠다.

한범이

2026. 7. 3.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부반장이었다.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이 정하신 것이다. 반장은 집이 좀 살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외향적인 애였지만 나랑은 잘 안맞았다. 난 그저 고교입시에만 집중하느라 바빴고, 나만 생각하는 미숙한 중학생이었다.  우리 반에는 한범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눈이 약간 사시였고 걸을때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공부랑도 거리가 멀고 약간 어수룩했다. 눈 부근이 항상 부은 모습이어서 아이들은 밤탱이라고 그 친구를 놀렸다. 특히 반장 녀석이 좀 집요하게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한범이는 놀림을 받으면 발끈해서 요즘말로 타격감이 좋았던 모양이다. 가끔 도가 지나치면 울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반장과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 별다른 개입은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이런 사정을 알았는지 한범이를 케어하는  역할을 나에게 자주 맡기셨다. 소풍 같은 활동 시에는 한범이를 데리고 다녔고, 한범이의 실업계 고교 지원 원서를 내는데 따라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상당히 귀찮았고 녀석에게 큰 관심이 없었지만 최소한 그를 괴롭히지는 않았기 때문인지 한범이도 날 편하게 생각했다. 한범이는 영어 필기체로 자신의 이름을 아름답게 쓸 줄 알았고(그것밖에 못하긴 했다) 나는 그걸 따라하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 후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애초에 난 걔를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후 동네에서 한범이를 마주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서로 인사는 했지만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고 돌아섰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변함없이 어수룩했지만 그늘져보이진 않았고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벽에 잠이 깬 아들을 재우느라 옆에 누워있을 때 문득 30년 전 그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도시락을 챙겨서 등교했었다. 누군가 그를 보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그를 먹이고 입히고 씻겼을 것이다. 내가 지금 내 아들에게 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땐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