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인을 만나다

2026. 6. 30.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 인구>를 읽었다. < 어둠의 속도 >를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무대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아주 먼 미래, 인류가 우주 곳곳으로 이주하는 세상이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강제 이주가 시행되자 모종의 결단을 내린다. 오필리아가 홀로 서는 초반부의 심리 묘사가 재미있다.  진짜 이야기는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으로부터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외계 생명체가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약간의 고비가 있었다. 외계 생명체의 외양 묘사나 그들이 쓰는 언어들이 내게는 잘 와닿지 않는다. 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외계 생명체와 관계를 형성하고 난 이후 이야기가 다시 좀 재미있어진다. 결말도 마음에 든다. 나는 여성이 만든 여성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작품은 특히, 노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기에 읽을 가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노년의 여성은 무가치한 존재로 간주되기 쉽지만 작가는 거기에 반기를 들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의 의도는 성공했다. 

자기객관화의 필요성

2026. 6. 25.  전 국민의 주목을 받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처구니 없는 실패를 하거나 망신을 당하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자리에 선임될 때 논란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러한 실패가 더 뼈아프게 느껴진다.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은 스스로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리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자기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능력,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올바르게 처신할 수 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동안 제대로 자기객관화를 하지 못했다면 리스크를 계속해서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날의 실패와 좌절은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 기회를 적절하게 이용하지 못한 것은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세상은 자기객관화를 방해한다. 계속되는 성공으로 인한 주변의 찬사는 달콤하다. 성공이 실패보다 더 위험하다. 성공에 안주하면 안된다. 늘 깨어있으라는 말은 그래서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C'è ancora do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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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24.  출장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를 보았다. 이탈리아 영화라서 선택했다. 이탈리아어 대사를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딱히 기대를 갖고 보진 않았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영화는 1950년 경 이탈리아 남부 어느 마을의 풍경을  흑백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촌티가 팍팍나는 시골 마을, 패전 직후의 궁핍한 모습이 한국의 옛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나로선 시간여행까지 경험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가정주부 델리아는 아내이자 어머니이다. 살림을 도맡으면서도 여러가지 부업으로 돈을 벌어오는 사실상의 가장이다. 무능한 남편, 병상의 시아버지, 다 큰 딸과 말썽쟁이 두 아들은 모두 그녀만 바라보고 사는 것 같다. 어느 날 그녀에게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하고, 그녀는 이 삶에서 탈출할 결심을 한다. 계속해서 도망칠 기회를 엿보는 델리아를  지켜보는 관객은 계속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탈출하기까지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 와중에 딸 의 약혼식은 잘못될 수 있는 모든 일이 잘못되면서 관객을 괴롭힌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그녀가 쟁취한 것은 관객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의도적으로 관객을 속인 셈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는데, 찾아보니 주연 여배우인 파올라 코르텔레시가 감독이었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만드는 여성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가 좋은 이유도 알 것 같다. 델리아의 남편은 무능한 주제에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고 피해의식도 강한 모습이다.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비춰질까? 우리 남성들은 늘 서늘한 마음으로 경계해야 한다.

새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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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23. 일년만에 다시 코펜하겐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던 터라 감회가 새로웠다.  도시는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모습이었다.   새로운 도시에서는 항상 그 곳에 사는 새들을 찾아보게 된다. 작년에 만난 오리가족이 생각나서 그 호수공원을 다시 찾았다. 역시나 새로운 가족이 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더니 그들은 손닿을 거리까지 다가왔다. 짜릿한 기분이 들었고, 새들을 놀래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동물들이 가족을 이룬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의 행복을 비는 것은, 사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다.

승부를 받아들이고 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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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16.  영화 F1을 뒤늦게 봤다. 레이싱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아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도전이 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소니(브래드 피트)는 20년 전 촉망받는 신인이었지만, 모종의 사고로 현장을 떠난 레이서이다. F1으로 돌아올 기회를 만나자 그는 승부를 건다.  그를 맞아 들인 팀은 패배에 익숙해져서 싸우는 법을 잊은 상태이다. 그는 팀을 도발하고 자극하여 변화시킨다. 당연히 갈등이 발생하지만 사람들은 소니에게 감화되고 팀은 강해진다. 이런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소니는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한다. 통념을 깨뜨리고 규칙을 어기는 것까지 팀 승리의 전략으로 활용한다. 그는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그는 다른 차량과의 충돌도 불사하고, 도그파이트에 유리하도록 차량 재설계를 요구한다. 안전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엔지니어에게 승리보다 안전이 중요하냐고 되묻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매튜 매커너히는 <그린라이트>에서 무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규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가끔은 규칙을 어겨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 규정된 선, 안전선을 넘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것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선을 넘는 결정은 베팅과 같다. 처벌받을 가능성과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을 견줘봐야 한다. 그래서 소니는 경기에 나설 때 트럼프카드를 무작위로 한장 가져간다. 인생이 나에게 내미는 패가 무엇이든, 승부를 받아들이고 싸우겠다는 의지이다. 패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패를 들고 싸우기 위한 전략, 싸워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나에게 쓰는 편지

2026. 6. 13.  어떤 친구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고 했다. 내가 그 일기를 다시 읽느냐고 했더니 그는 아니라고 했다. 읽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죽은 후에는 누군가가 그 일기를 읽게 될텐데 결국은 다시 읽히는 날이 오는 것 아니냐고 했고 그는 그런 가능성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읽히지 않을 글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읽히지 않은 채 사라진다면 그 글은 존재한 적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글은 누군가에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나 자신에게라도 다시 읽혀야 한다.  김동조 선생은 자신이 읽고 싶은 글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본인의 글을 가장 많이 읽는 것은 자신이라고 했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이어야 타인에게 보여줄 가치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 나는 과거의 내가 보내온 편지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꺼내본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2026. 6. 4. 존 핀의 <해빗 메카닉>에서 인간은 습관으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한다. 인간 행동의 98퍼센트는 무의식적인 습관에 따라 행해진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일종의 자동화 기계와 같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로 독서모임을 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한 줌의 가능성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는 것 뿐이다. <해빗 메카닉>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습관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당신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