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2026. 5. 21. 로버트 M. 새폴스키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인데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매우 실망스럽다. 소로스는 <금융의 연금술>이라는 책에서 지퍼 이론을 말한다. 미래로 가는 길에는 수만가지 가능성의 분기점이 열려있지만, 현재에 이뤄지는 선택들이 그 중 하나의 경로를 확정짓게 되고, 과거를 돌이켜보면 오직 하나의 경로만이 보이게 되는데 그것이 외길처럼 보인다. 그 모양이 마치 지퍼가 채워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혹시 새폴스키는 과거가 하나의 경로처럼 보이는 것을, 사후적 관점에서 필연이라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닐까?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테드 창의 의견을 좋아한다. 자유의지란 허상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은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자유의지를 실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의견을 선택하겠다.

부끄러워서 분발한다

2026. 5. 20. 세미나에서 약 5분간 발표를 부탁받아서 정말 부담없이 자료를 준비했다. 나는 가장 마지막 순서였는데, 앞서 발표한 팀들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슬라이드를 준비해왔고 내가 준비한 자료에 비해 더 풍성했다. 내 슬라이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부담없이 준비한 것은 안일한 판단이었다. 말로 잘 때우긴 했지만 부끄러워서 속이 쓰렸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자책하면서 괴로워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그저 더 잘하자는 생각이다. 부끄러움이 느껴지면 더 잘하자고 되뇌인다.  실행과 관측, 그에 따른 피드백이 삶의 전부라는 생각이다. 나는 실수를 했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삶을 생생하게 살아가니까 생긴 일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실수도 없고 불편함도 없는 삶은 그냥 죽은 삶이지 않을까.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것은 안된다. 

지옥에서 탈출하는 글쓰기

2026. 5. 15.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를 읽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등장하기 때문에 반가웠다. 이 작품에서는 허클베리와 같이 모험을 떠나는 흑인 노예 짐이 주인공이다.  헉과 짐의 여정은 흥미롭다. 미국 곳곳의 사람들과 풍경들이 생경하면서도 재미있고, 빠른 전개에 지루할 틈이 없다. 어느 사기꾼 듀오와 만나는 장면은 블랙 코미디여서 출근길에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고 말았다.  짐은 자신이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노예로 살아야 하는 미국은 그에게 지옥이다. 짐의 시선을 통해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모든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노예제도는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이다. 영화 <노예 12년>이 생각나기도 했다.  짐은 긴 여정을 거치는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글을 써야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험난한 모험 중에도 작은 연필을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노예는 연필을 소유할 수 없었기에 그 연필은 누군가의 목숨 값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그는 자유를 쟁취할 힘을 얻는다. 짐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고 더 좋은 펜을 소유한 나로서는, 글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시시피 강변 어딘가에서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말려가면서 몽당 연필로 글을 쓰는 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펜을 잡는다.

이탈리아어 라디오

2026. 5. 9. 이탈리아어 공부를 위해 여러가지를 하지만 라디오를 듣는 것도 재미있게 하고 있다.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인 RAI에서 친절하게 라디오 앱을 출시하고 있다.  여러가지 방송이 있다. 음악방송도 있고, 성우가 낭독을 해주는 방송도 있다. 그래도 역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이다. 책에 대한 토크쇼가 가장 내 필요에 부합하는 것 같아서 듣기 시작했고 출퇴근길에 반복청취하고 있다. 집중하고 들을 때도 있고 BGM처럼 화이트노이즈로 듣기도 한다. 알아듣느냐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알고 있는 단어나 표현들이 문득 문득 귀에 들어오는 수준이다. 알아듣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분명히 의미가 있다. 나의 언어중추는 반복되는 청취로부터 통계적 유의성을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영어를 처음 배울때도 AFN 라디오를 항상 들었고 가끔 케이블방송의 CNN뉴스채널을 멍하니 바라봤었다. 당연히 못알아들었었지만 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었다. 누적된 인풋의 힘을 믿는다. 

정치와 사업

2026. 5. 8. 조너선 카우프만의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의 종장을 읽었다. 상하이의 두 가문은 일본에 시달리고 국민당에 시달리다가 공산당이 들어온 후 파국을 맞는다. 공산당 지배 하 상하이의 몰락은 <상하이를 떠나는 마지막 보트>에서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자본주의가 번성하던 상하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였고 필라델피아와 유사한 인상을 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극심한 빈부격차가 지속되었고 이는 결국 공산주의를 불러들이는 씨앗이 된다. 상하이에서 거대한 부를 일궈낸 두 가문은 사회적 책임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행하지만 공산주의 하에서 돌아오는 것은 비난 뿐이다. 그들은 많은 재산을 잃고 떠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정치적 급변으로부터 무사할 수는 없다는 교훈을 얻고, 그건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적 재산보다는 정신적 재산이 중요하다. 물질은 빼앗길 수 있지만 정신은 빼앗길 수 없다. 올바른 정신과 사업수완이 있다면 물질은 복구할 수 있다.

아들 사랑

2026. 5. 7. 14개월 아기인 아들이 나를 많이 사랑한다. 내가 출근하면 크게 울면서 나를 잡는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우는 걸 아내가 달래러 가면 아빠 오라고 한다. 내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는다. 나는 잠이 모자라서 죽을 맛이지만 내 품에 안긴 아기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아들이 없는 편안한 밤을 내게 준다고 하면 나는 거부할 것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책

2026. 4. 30. 조너선 카우프만의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기 전 상하이에 번성했던 자본주의 세계를 조명해주는 책이다. 이야기는 바그다드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살던 서순 가문이 정치적 급변으로 맨몸으로 탈출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제로에서부터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실화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이런 모험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슈독>의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도 비슷한 설레임을 느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린 지도, 다른 사람이 밟던 길을 따라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건 내 여행이고 내 인생이다. 내겐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멋진 말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다.  그 두근거림이 주는 에너지로 내 삶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