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6의 게시물 표시

공간의 힘

2026. 4. 11. 오랜만에 모교회에 들렀다.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던 것도 좋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움직인 것은 성전 우측, 성가대석 뒷편의 스테인드 글라스였다.  나는 성가대석에 앉아 스테인드 글라스가 내 손바닥에 만들어내는 색색의 빛깔을 발견하는 것을  항상   사랑했었다. 자연스럽게 이 교회에 처음 등록해 어색하던 시간들,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노래하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 모든 추억들을 단숨에 되살린 것은 이 공간의 힘이다. 이 공간을 사랑하는 건, 내가 여기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시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공간이 오랫동안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2026. 4. 9. 포기하면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은 상투적이다. 너무 많이 말하고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뻔해서 이 말을 듣고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 말에 정보값이 없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실제로 포기한 때도 많았다. 어느 시점에 내 삶이 지리멸렬해지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야 경고등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포기하면 안된다는 말은 내게 힘을 준 적이 없었다. 아들을 얻고서는 삶을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서는 내가 포기하면 나를 지켜보는 사람은 더 빨리 무너진다고 했다. 포기하면 안된다는 말은 새로운 힘을 얻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가 샘솟는다. 

펑안을 기도한다

2026. 4. 3. 닐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를 읽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2차세계대전 당시의 인종주의, 그리고 무자비한 살육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담담하게 팩트만 말하는데도 충격적이다. 사람의 목숨이 이토록 쉽게 다뤄질 수 있을까? 영아 살해까지 서슴치 않는 잔인함에 치가 떨린다. 퍼거슨은 그 전쟁이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악과 악의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추축국의 만행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연합국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서도 구한말부터 한국전쟁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허망하게 죽었던가. 온 세계가 미쳐있었던 것 같다. 인류 전체의 역사를 볼 때 100년 전은 매우 가까운 시점이다. 20세기 말에 내가 누려온 평화로운 세계가 예외적인 상황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평안을 기도하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