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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펠드먼 배럿, 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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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저자의 강연록을 모은 형식인데요, 8개의 강의가 모두 훌륭합니다. 한 챕터 끝날때마다 곱씹어야 해서 빨리 읽을 수 없었고, 끝나는게 아쉬워서 아껴서 읽고 싶어서 끊어 읽었습니다. 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결국은 철학적인 결론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포인트들을 조금 소개드립니다. 1. 생존을 위해 진화하면서 뇌는 예측기계가 되었다. 진화에는 <왜>가 없다. (31)  자연선택은 우리를 향해 진행되지 않았다. (51) 뇌는 생각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생존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생체 에너지 Budget을 운영하는 것이다. 먹이의 움직임, 천적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에 집중함. 생존이 걸려있기에, 뇌는 항상 예측을 하고 있다. 2. 우리는 연결된 존재로서 가치가 있다. 연결 자체가 핵심이다. 뇌는 네트워크다. 연결 자체가 구조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타인에게 (뇌와 몸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 (143) 어린이의 뇌는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양육자, 주변 사람들이 어린이에게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에 반응해서 자라나는 것이다. 예술은 예술가가 절반만 만든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감상하는 사람의 뇌가 만든다. 3. 뇌과학을 알면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뇌가 사회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초능력이다.  초능력은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 어떤 종류의 마음도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마음보다 낫거나 나쁘지 않다.  그저 다양할 뿐. 그래서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변이가 있을 뿐이다. (160) 매일 5분 동안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 보라.  당신의 머릿속에서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만큼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당신과 정반대 신념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

독서평 :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법 (데릭 시버스, 현대지성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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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기도 쉽고 핵심을 찌르는 메시지가 좋습니다. 저자는 창업으로 큰 돈을 번 사람이고, 자신만의 성공철학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공의 8할은 운이기 때문에 그의 방법이 반드시 성공의 비법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뭔가 생각해볼 계기만 갖는다 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킨 저자의 생각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다소 거칠게 정리되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배불러서 더이상 못먹겠다는 느낌을 상상해보자.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는가? 돈과 관심, 인정 : 이것들에 저렇게 배부르다면 뭘 하고 싶냐고. 그게 진짜 니가 원하는거야.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책임 의식을 가지라는 말이다. i love being wrong : 틀려야 배우니까. 안하면 죽을 것 같은 것만 남겨라.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소리이다. 남들이 나에게 애걸할 때까지 사업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멍청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럼 넌 지금 생각이 멈춰있다. 좋은 goal과 나쁜 goal.  좋은 골은 생생하고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나쁜 골은 vague하며 자꾸 미루게 된다.  이 문장이 와닿는 것은 목표 자체를 의심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통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이 문장은 내가 문제가 아니라 목표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Possible Future 개념을 생각해보라. 대안 현실은, 내 삶의 어떤 갈림길에서 내가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 삶에서 관심이 있었지만 외면했던 그 일들을 한번 리서치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로 살아가는 대안 현실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의 삶에 대한 메타인지를 얻을 수 있다. 삶의 각 단계에서 전략을 수시로 바꾸는 거다.  깊이 파는 전략이 좋을 때도 있고, 넓고 얕게 파는 전략이 좋을 때...

독서평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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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문학이라는 장르. 모든 챕터가 요리 레시피로 시작한다. 요리 재료를 나열한 페이지가 나오고, 본문에서는 요리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챕터를 연다. 양파를 다지고, 고기를 볶고, 향긋한 냄새가 주방에 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멕시코 요리에 대해 자세히 몰라서 조금 아쉬웠다. 만약 멕시코 요리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 챕터를 규정하는 느낌을 강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약간 판타지 성향이 다분한 소설이기도 하다. 묘사에 과장이 심한데,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티타의 눈물이 강같이 흘러 계단으로 쏟아져 내려가면서 콸콸 쏟아진다던가. 집안의 독재자 엄마 때문에 결혼도 못하는 일이 있다고? 심지어 청혼하러 온 남자에게 다른 자매랑 결혼하라고 부추긴다고? 그리고 그 남자는 그걸 받아들인다고?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지만, 그래야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으니까. 마더 엘레나는 어쩌면 그렇게 냉혈인간인지. 나중에 그녀의 인간적 약점도 드러나지만, 자신의 친딸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주인공 티타는 실연의 상처로 점차 무너져가지만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주방 생활과 맛있는 음식들이다. 이 책의 주제는 에로틱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여성 작가가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내는 에로티시즘이 인상적이다.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도 무협지처럼 과장된 묘사가 나오는 것이 웃기다.

독서평: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리처드 번스타인, 책과함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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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차대전 무렵,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돌아보는 책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시절 미국은 정말 세계 최고의 국력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미숙함을 보여줍니다. 미국이 좀 더 지혜롭게 행동했더라면, 동아시아의 미래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요? 미국은 국제관계를 도덕적인 판단기준, 정의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갖는데, 미국의 수많은 외교 실패가 여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역사에 돋보기를 들이대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제가 재미있었다고 느끼는 관전 포인트를 몇 가지 공유드립니다.   1. 국공내전 시절의 중국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1930년대 초에 중국 농촌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던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헨리 토니Richard Henry Tawney는 전형적인 중국 농민을, 목까지 차는 물속에 서 있어 "잔물결이 한 번만 일어도 곧바로 익사할 수 있”는 사람에 비유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기에는 잔물결이 자주 일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고향에서 이렇게 먼 곳에 와서 살고 있습니까?" 토니가 한 농민을 면담하면서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비적들, 병사들, 그리고 기근 때문이죠." 2. 공산당은 정말 사악한 집단이다. 공산당의 거짓말과 생떼는 정말 징그럽다.  공산당의 기만은 정말 치가 떨린다. 상대방 말에 다 수긍해주면서 뒤로 딴짓하기. 스탈린이고 마오쩌둥이고 김일성이고 다 똑같다.   가장 온화해 보이는 공산주의자조차 냉혈한이다. 저우언라이는 암살대를 운영한 잔혹한 면도 있었다. 그해 연말께 마셜이 트루먼에게 자신은 더 이상 중재 노력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을 때, 가장 큰 이유로 "거짓말과 격렬한 공격으로 점철된 공산당의 악랄한 선전을 지적했다.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에 대한 비하인드가 충격적이다.  그 자신은 진실했을지언정 사실은...

독서평: 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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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에서 작은 가구매장을 운영하는 레이 카니는 험한 동네에서 험하게 자라났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의 범죄자들과 자꾸 엮이게 되면서 그도 조금씩 말려들게 되는데… 레이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흑인 중에서도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고, 그 때문에 장인과 장모는 레이를 은근히, 대놓고 무시합니다. 레이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복수도 하게 되는데… 재미있냐고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에 따라 다릅니다. 이 작품은 줄거리가 재밌다기보다는 분위기를 즐기는 작품입니다. 당신은 작가의 안내를 따라 뉴욕 할렘의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주인공이 느끼는 긴장을 같이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는 빛과 어둠의 영역 양쪽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죠. 이 긴장감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캐릭터 쇼이기도 합니다. 각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입니다. 사고뭉치이고 주인공을 범죄의 세계로 말려들게 만드는 사촌 프레디. 레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깡패 페퍼. 레이에게 돈을 뜯으러 찾아오는 부패 경찰. 레이에게 보호세를 받아가는 폭력조직. 레이에게 보석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노련한 장물아비. 레이의 이중 생활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직원들. 가난한 흑인을 경멸하는 부유층 흑인들. (레이의 장인 장모도 포함)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플롯이 치밀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레이가 과연 살아남을수 있을지 걱정하며 읽었습니다. 종장에는 드디어 레이에게 파국이 찾아오는가 싶어지는데... 당신이 결말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집니다.

센스메이킹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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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센스메이킹이란 개념을 처음 접했는데요, 센스메이킹이란 데이터 속에서 피상적인 결과를 넘어서는 통찰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제가 인상깊게 읽었던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독립적인 개인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생각하는 존재들이다. 맥락이 제거된 데이터는 위험하다.  현장에서 동떨어져 맥락이 제거된 기업경영진은 중대한 오판을 하게 된다.  맥락을 찾아라, 센스메이킹이 필요하다. 소로스의 영란은행 사건을 센스메이킹 프로세스로 설명해 준 것이 크게 와닿는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센스메이킹을 위해서는 현상학이 필수적이다. 피상적 세계에 스스로 갇힌 경우가 너무 많다. 디자인 사고방식에 대한 통렬한 비판. 무지한 자들의 창의성이란 개념을 비웃는다. 의지를 가지면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혁신적인 통찰은 "은혜롭게" 온다고 한다. 종교색이 배제된 은혜라는 단어가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단, 피드백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지는 마라. 책을 마무리하는 인용구가 강렬하다.  혼란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라. 계속 혼란에 빠지려고 노력하라.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마음을 열어라. 영원히. 너무 열어서 아플 만큼. 그리고 조금 더 열어라. 죽는 날까지. 끝없는 세계, 아멘. - 조지 손더스

독서평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아세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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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세모글루 교수의 대표작입니다. 다른 책들도 다 좋지만, 저는 이 책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잘되는 나라는 왜 잘되고, 안되는 나라는 왜 안되는지를 말하는 책입니다. 저자의 의견에 매우 공감합니다. 한국 또한 남한과 북한이라는 생생한 비교가 가능한 조건이죠. 남한의 성공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피상적인 구분보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이 모두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1. 성공과 실패의 피드백 구조 포용적 정치체제와 포용적 경제체제는 상호 선순환을 일으킨다. 선순환에 따른 변화는 점진적이어서 더 강력하고 거부하기 어렵다. 착취적 정치체제와 착취적 경제체제도 마찬가지로 악순환으로 서로를 강화시킨다.    2. 성공의 우발성 저자는 반복적으로 우발성을 강조한다. 포용적 제도를 갖게된 것은 다양한 세력이 상호견제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기 때문인데, 저자는 그 출발 자체는 우연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있다.  흑사병을 계기로 동유럽과 서유럽의 분기가 발생한 사례를 들어, 동일한 사건으로부터 다른 결과가 도출된 것은 우연의 역할임을 부각시킨다.  성공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포용적 제도를 갖게된 대부분의 국가는 자신들의 성공 요인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 포용적 제도를 만들면 승자가 된다는 사전인식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3. 퇴행 가능성  베네치아의 흥망성쇠 이야기는 흥미롭다. 포용적 제도 때문에 성공하였으나 자신들의 성공 요인을 몰랐다. 기득권층에 대한 견제가 사라지자 착취적 제도를 채택하고 쇠퇴하게 된다.  한국은 비교적 포용적인 제도를 통해 성공하고 있으나, 퇴행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성공의 선순환 고리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실패의 악순환 고리를 깨려고 노력해야 한다. 4. 손실회피 성향  ...

독서평: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수전 올리언,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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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제목을 다시 보면 좀 지나치게 거창하다. 원제는 그냥 <도서관의 책 The Library Book>이라서 좀 밋밋했는지 이런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음미해보면 원제가 더 좋다. 이 책은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책이다.  당신은 도서관을 얼마나 이용하는가? 당신의 삶에서 도서관이란 어떤 존재인가? 도서관에 잘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큰 감흥이 없을 것이다. 도서관을 사랑한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를 다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도서관은 커뮤니티이자 사회안전망이기도 하다.  이 책은 LA중앙도서관 화재사건을 취재하는 르포르타주이기도 하면서, 그 도서관의 역사를 다루고, 도서관의 현재를 관찰한다. 그러니까 3개의 서사를 교차하면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인 셈이다.  각 챕터는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3개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므로 처음에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가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저자의 취재 여행을 함께하는 느낌이다. LA중앙도서관 화재사건 이 부분은 두가지 성격이 있다.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와, 도서관의 화재로 크나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 화재가 있던 날 수상한 행적을 보이는 사람, 그를 기소한 수사관들을 인터뷰하고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것은 탐정의 정석 같은 행보이다. 사랑해마지 않는 도서관이 불타고, 소화수로 젖어서 망가진 책들도 산더미. 도서관 화재에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 젖어버린 책을 되살리려는 노력에 시민들이 동참하는 이야기가 인상깊다. LA중앙도서관의 역사 LA중앙도서관은 LA라는 도시의 성장과 함께 자라났다.  역대 도서관장의 인물 군상 이야기들. 화재가 발생한 그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내력들은 미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여성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던 시절, 흑인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던 시절 ...

독서평 : 어메이징 브루클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미래지향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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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하나는 확실하다.  전체 플롯을 숨겨두고 조금씩 드러내는 솜씨가 좋다. 읽는 내내 다음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솜씨. 해피엔딩이라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범죄와 악이 판치는 빈민 주택에서 따뜻한 마음과 정의는 살아서 움직인다.  아니,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이었음을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악인들의 좌충우돌은 그냥 소음에 불과했다. 캐릭터는 정말 확실하다. 소설의 재미는 캐릭터에서 온다. 다채로운 캐릭터가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교회 집사이자 주인공인 스포츠코트. 그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알콜중독자이다. 어느 날 동네에서 마약을 팔고 있는 옛 제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총을 쏴버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네 마피아인 엘레판테. 아버지 때부터 경영해온 밀수업을 묵묵히 수행하며 살아가는데, 40세 노총각으로서 외로움을 절절하게 통감한다.  노총각 생활이 길었던 나도 그저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 커즈하우스 사람들과 다른 범죄자들도 개성있는 인물들이라 심심할 틈이 없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스포츠코트와 딤즈의 마지막 담판 장면이다. 저자의 빌드업이 빛을 발한다. 그 장면에서는 그저 숨을 죽인 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을 느꼈던 대목은, 경찰인 포츠와 지 자매가 서로 끌리는 순간을 묘사하는 장면들이다.  2,3회에 걸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지는데, 수사 중인 경찰과 증인의 입장으로 만나지만, 설레임은 감출 수가 없다. 읽는 사람이 가슴이 뛰게 만들 정도의 묘사가 좋다. 그 둘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이 책의 제목이 유감스럽다. 원제는 디콘 킹콩(Deacon King Kong)으로. 킹콩 집사라는 뜻이다. 주인공을 의미하는 것. 그런데 번역 제목인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다 읽고 나니 조금 생뚱맞게 느껴진다. 소설의 무대인 커즈하우스가 브루클린에 있다는 정도인데..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킹콩 집사라고 하자...

독서평: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엘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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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단편은 재미있을 뿐 아니라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괜히 명성이 자자한 것이 아니다. 그는 과학적인 지식도 깊고,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다. 테드 창의 안내를 따라 그가 창조해낸 세계 속을 여행해보는 것은 분명히 가치있을 것이다. 바빌론의 탑 바벨탑 모티브의 이야기.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탑. 여기에 원통 모양의 세계라는 설정을 접목. 기발하다. 이해 어떤 가상의 호르몬 치료제를 맞은 주인공은 갑자기 지능이 엄청나게 향상되어 신이 나는데… 정부가 자신을 구속하려는 낌새를 친 주인공은 모든 포위망을 뚫고 도망을 치는데… 마치 영화같다. 그의 지능향상이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이 무척 재미있다. 완전무결한 상태에 도달하나 싶었는데… 주인공과 대등한 초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접근해오고? 영으로 나누면 조금 난해한 이야기. 우리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수학의 체계가 다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실존적 위기에 처한 주인공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데... 수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좀 읽기 어려울 것 같다. 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컨택트>로 만들어진 바로 그 이야기 .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물리학을 깊이 배워본 적 없는 사람들에겐 그냥 이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물리학에서 "목적론"적인 사고방식이 무슨 의미인가? 말하자면 빛은 매질이 달라질 때 굴절하는 데 최소의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찾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왜 빛은 이런 저런 경로를 시험해 보지 않는가? 여기에서 목적론적인 사고가 등장한다. 외계인은 결과를 이미 알고 있고, 정해진 경로에서 최선의 경로도 이미 알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액션을 취할 뿐이다. 인생을 고찰하는 아주 귀한 관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흔두 글자 좀 난해하다. 호문쿨루스가 마치 실재하는 일이었던 것처럼 등장하고.. 일종의 마법세계를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고도로 발전한 과학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주인공은 자신의 재능에 이끌려 연구에 매진하지만, 알고보...

독서평 :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북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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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재미없었던 적은 없었다. 최소한 읽는 동안에는 말이다. 믿고 읽는 작가 중의 한명이다.  살인사건을 겪은 유족들이 모여서 사건을 재검증한다? 그것도 강제성 없이 자발적으로? 다분히 일본스러운 설정이고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소설이니까 용서해주고 넘어간다. 가가 교이치로 형사는 매력적이다. 냉정하고 논리적이면서도, 따뜻한 배려심이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용의자를 차근차근 밝혀나간다. 읽을 때는 몰랐지만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면 조금 웃기는 점이 있다.  용의자는 태연하고 침착하게 사람들 속에서 가가 형사의 추리를 구경한다. 하나씩 진실이 드러날 때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그러다가 가가 형사가 당신이 범인이라고 지목하는 순간, 또 태연하게 인정하고 차분하게 범행을 자백한다. 솔직하게 좀 납득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이다. 읽는 사람을 두번 놀라게 하는데… 특히 무고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사람이 요주의 인물이다. 그건 실망스러운 점이기도 하다. 추리소설을 하도 많이 쓰다보니 이제 독자를 놀래키기 위한 방법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10년 하가시노 작품 중 틀림없는 최고 걸작이라는 홍보 문구에 동의 못하겠다. 재미있는 건 틀림없지만 평이하다.

독서평 : 광인 (이혁진,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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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사랑의 이해>는 읽지 않았지만 드라마를 아주 좋게 봤었다. 주인공 해원은 40대 초반의 싱글 남성. 그가 주식투자, 대출없는 아파트, 채굴같은 단어를 말하는 것이 내 또래라는 인식을 주어서 친근했고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결혼 못한 스트레스로 엄마와 연락을 안한다는 설정. 이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지. 작가님 또한 딱 이 또래의 사람이었다. 위스키를 잘 모르지만 작중에 묘사되는 위스키의 맛에 대한 표현이 정말 좋다. 나도 위스키를 마셔보고 싶을 정도였다.  <경고> 스포일러 주의. 책을 읽고 난 후에 읽는 것을 권장함. 이 책에서 주인공 2인, 준연과 하진이 철학 이야기를 많이 해서 읽기가 조금 괴로웠다.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십중팔구는 없을 것이고, 그런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그와의 대화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는 정말로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느낀다.  아마도 작가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평소 생각한 것을 말하고 있나 싶었다. 준연과 하진이 이런 철학을 깊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인물 설정이기도 했다. 그들의 실제 삶도 그런 모습이기에 망정이지, 그냥 듣기에는 개똥철학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내용들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 해원이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풀어놨기 때문에, 중간에는 조금 읽기가 버거웠다.  특히 불을 지르기 직전에는 개새끼라는 둥 원색적인 욕설을 동원하여 증오심을 표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결국 준연과 하진을 두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혼자만의 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급격히 반전하는 심정을 묘사하는 것도 인상깊었다. 해원의 그릇이 크지는 않지만, 해원을 미쳐가게 만든 준연과 하진 두 남녀도 잘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도덕적 기준이 너무 높다. 두 남녀가 외딴 산속에서 몇날며칠을 밤낮으로 일하는 데 ...

독서평: 플로베르의 앵무새 (줄리언 반스,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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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나? 왜 이 작품이 소설로 분류되는지 잘 모르겠다. 화자는 플로베르라는 작가를 추앙하면서 그의 흔적을 쫓고, 독자는 그의 여정을 함께하는데 대부분 화자가 주절주절 떠드는 내용을 듣는 입장이 된다. 그 내용이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주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작가가 플로베르의 연대기를 3번에 걸쳐 다르게 보여준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인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나? 한 챕터에서는 플로베르의 연인이었던 여인의 변론을 소개한다. 그 부분도 무척 재미있었다.  또 다른 챕터에서는 플로베르에 대한 시험문제를 출제했다. 한국인이라면 익숙할 것 같은 형식이다. 나도 모르게 시험문제를 풀어보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게 되면서, 작가가 의도한 생각의 틀로 들어가는 경험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읽는 내내 당혹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만두지는 못했다. 생각해볼만한 고민들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에 사로잡혀 끝까지 읽어내고 말았다.  다 읽고 작품해설을 보니, 이 작품은 “전기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플로베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지만, 다양한 각도로 어떤 인물에 대해 접근해가는 방식은 분명 비교대상이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화자의 말 중에서 가장 뜨끔했던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더욱 준엄한 비판이다. 책은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는 곳이고, 삶은 설명이 없는 곳이다. 삶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는다. 책은 삶을 의미 있게 한다. 유일한 문제는 책이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당신 자신의 삶 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 이라는 점이다. (209)

독서평: 세 여자 (리사 태디오, 코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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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일단 매우 흥미로움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세 여자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치부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밀한 사건과 감정들. 책 홍보문구에서는 여자의 성욕을 다룬다고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인 나로서는 흥미진진했지만,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여자의 성욕을 이해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세 여자의 성욕이 어떤 전형적인 사례라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 다만, 이 책의 이야기들은 어떤 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고, 독자의 마음에는 의문과 여러 감정들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어떤 것을 느끼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정리해보면,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여성들이 자신을 파괴하는 양상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감상을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매기. 그녀는 성숙한 어른과의 꿈같은 사랑을 시작하지만 그 사랑은 파국으로 끝난다.  그녀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놀랍고 신비한 세계를 탐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은 그저  일탈의 기회를 잡고 실행한 것 뿐이고, 일이 꼬이는 순간 즉시 배신한다. 그들이 문자로 대화를 그토록 길게 이어간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가 그에게 편지를 쓴 순간 이미 무언가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물론 그 어른은 개새끼이지만, 케미가 불타오르는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타오르게 내버려둔 것이 문제이다. 슬론.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기는 한 건가? 그녀에게는 섹스 뿐인 것 같다. 그녀는 섹스와 사랑을 헷갈려하는데, 그것은 마음에 구멍이 나있기 때문일까? 남편의 변태적 성향으로 그녀는 스스로도 긴가민가 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녀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은 어디에...

독서평: 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놀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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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한, 유쾌한 추리소설입니다. 힐링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어두워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가사사기라는 엉뚱한 친구와 중고상점을 운영 중인데, 어쩐 일인지 그들 주변에서는 자꾸 사건이 발생합니다. 가사사기라는 친구는 탐정을 자처합니다. 그는 엉뚱한 추리를 연발하면서 실소를 자아냅니다. 가사사기의 개그 추리를 다 받아주면서, 진짜 추리는 주인공이 합니다.  사건을 해결하고도, 친구가 해결한 것처럼 만들어주는 따뜻한 배려심의 주인공.  해결 과정에서 여자의 부끄러운 개인사가 드러나지 않도록 보호하는 모습은 정말 멋집니다. 주인공이 친구를 감싸는 이유는 마음이 따뜻해서이기도 하지만, 친구와 사랑하는 사이인 나미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가사사기의 추리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그를 오매불망 사랑하는 귀여운 소녀입니다. 그녀의 진심이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독서평: 더 패스 (마이클 푸엣, 크리스틴 그로스 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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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이 설명해주는 동양 철학 사상 이야기. 우리는 서구화된 사회에 살면서도, 동양적 사상이 내면화된 사람들이죠.  서양인의 가치관으로 동양 철학을 다시 설명해 주는 것이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진정한 동서 철학의 융합입니다. 솔직히 큰 기대가 없었는데,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정해진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저는 이 문구에서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이해한 대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마도 저만의 관점이 반영되었을텐데, 의아한 부분이 있으시다면,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1. 공자: 제례의식은 가상현실이다. 인간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부모이자 자식이고 조직의 일원인 것처럼, 무수하게 많은 면모를 지니고 있다. 제례를 통해 다면적 자신을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니까 일종의 가상현실의 무대를 제공하는 것.  이러한 무대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갈등이 해소되고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놀이가 이런 의식이다. 서로의 역할을 바꾸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어른과 숨바꼭질을 하면 아이는 처음으로 권력을 경험한다.  <내 생각> 종교의식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정기적으로 종교시설에 가서 엄격한 형식에 따른 제례를 실시하는 것이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2. 맹자: 이 세상은 변화무쌍한 것, 나도 변화해야 한다. 세상이 원래 변화하는 것을 인정할 때, 모든 가능성을 열고 결정을 내리며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행동해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신을 규정해버리면 융통성있게 행동할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전체 맥락을 감지하려면 감정을 훈련해야 한다.   자아도 복잡하고 세상도 복잡하고 상황도 복잡할 때 결정을 고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독서평 :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 (데이비드 미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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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습니다. 와, 정말 너무 재밌어요.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면서 재밌다고 느끼는 중입니다. 이 책을 펼치면 당신은 그 세계로 빨려들어갑니다. 당신은 에도 막부시대 말기, 나가사키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접촉이 허락된 데지마 섬에서 무역상인으로 일하는 "야코프 더주트"라는 네덜란드 사람이 됩니다. 1인칭 시점은 아니지만, 주로 야코프의 시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로만 서술을 제한하기에 이런 몰입감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그런 소설은 흔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가 일본인들보다 야코프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야코프의 사고방식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서구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들은 미스테리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일본 측 사람들은 의뭉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모두 친구이냐? 그것도 알 수 없죠.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를 모르는 애매함이 긴장을 최고조로 높여줍니다. 주인공은 정직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조직에 대한 양심을 지키며 정도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동료 직원들과 일본 측 통역관들은 주인공을 싫어하기도 하고 협박도 합니다. 이로 인해 느껴지는 긴장감이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러나 작가가 설계한 음모는 너무 음침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갑자기 작품이 무협지 수준으로 떨어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긴장감과 호기심은 오히려 커집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속도가 빠르고, 작가가 벌려놓은 문제들은 급하게 해결되는데 약간 당황스럽지만 또 나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해결이 최선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야코프와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화는 모든 것을 매듭짓는 장면입니다. 좋은 마무리입니다.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더더욱 재미있을 것입니다....

독서평: 상자 밖에 있는 사람 (아빈저 연구소, 위즈덤아카데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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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번 읽어보세요. 특히 인간관계 갈등이 있는 경우 좋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관계의 본질에 기반한 지침이라고나 할까요? 흔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들 하지만 조금 막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조직내 불협화음, 부조리의 원인을 상자에 들어간다는 개념으로 설명해주니까 강렬하게 와닿습니다. 상대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대할 때 진정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상대를 그저 대상으로 취급하면 짜증나고 상대가 열등해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특히 자기배반이라는 개념이 매우 유용합니다. 이 책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 반하는 행위를 '자기배반'이라고 정의합니다. 자기배반을 한 후에는 자기합리화가 시작되고, 그 다음에는 상대를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배반 모드에 들어간 사람을, 상자에 들어간다는 표현으로 비유합니다.  아, 지금 내가 상자에 들어갔구나. 상자 밖으로 나가보자. 상자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ego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타이밍에 비난하지 않고, 책임을 공동의 것으로 돌리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저자의 핵심 비법입니다.

독서평: 블러프 (마리아 코니코바,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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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평가한다.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다. 좋은 결정은 과정이 올바른 것을 말한다. 결과는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예측, 결정에 대한 책들과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바로 포커에 관한 책입니다.  포커를 쳐본 적이 없는 심리학 전공의 저널리스트가 포커를 직접 배우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고, 대단히 철학적인 이야기이기도합니다. 저자는 결국 프로 포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이 때는 읽는 독자도 짜릿함을 느끼게 됩니다. 포커가 흥미로운 이유는, 포커의 본질은 올바른 의사결정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도박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만나게 됨을 의미하지만, 올바른 의사결정을 반복한다면 포커에서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비슷하지 않은가요?  저자의 글솜씨도 훌륭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저는 포커에 아예 흥미가 없었지만 중간부터는 인터넷으로 포커를 치면서 읽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종종 포커를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책을 꼭 읽어보세요. 추가로 공유하고 싶은 인용구들을 남겨드립니다. 1. 생각하면 할수록 학자로 사는 게 정말로 도박과 무관한지 의심스럽다.   내가 학자의 길을 걷는다고 상상해봐도 그렇다. 내가 공부한 분야는 무엇인가? 사회심리학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경과학이 주목받고 있다. 일자리의 전망이 아니라 관심사를 따른다고 해도 그렇다. 나는 누구 밑에서 공부했는가? 아직도 성격 5요인 모델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대학에서 일자리를 얻으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나의 지도교수는 월터 미셸이었다. 그는 성격 5요인 모델과 거리가 멀었다. 논문은 또 어떤가? 누가 내 논문 초고 심사위원으로 배정될까? 나의 논조에 동의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내 연구가 너무 하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일까?   2. 어떤 것에도 무조건은 없다.   항상 고민...

독서평 : 퍼스트 레이디 (커티스 시튼펠트,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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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통속적인 면이 있는 책이어서, 이 책이 재밌었다는 사실이 약간 분하다. 그러나 재미있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갈팡질팡하고, 자신을 의심하고, 남편을 혐오하다가도 사랑하는 그 마음들.  남자로서 여자의 내면을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성장과정의 실수와 방황들이 가감없이 묘사되는 것이 좋았다. 성적인 묘사도 아주 자세하게 나오는데 그것들이 야하게 느껴진다면, 읽는 사람 자신의 문제이다. 표지의 저 대사가 폐부를 찌른다. 주인공의 할머니가 조언해준 말이다. "잊지마, 남자들은 아주 불안정한 존재라는 걸." 남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대사의 맥락을 좀 더 설명하자면, 방황하는 남편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아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할머니가 조언해주는 것이다.  남편은 네가 그를 붙잡아주기를 바라고 있단다. 나는 이 작품에서 할머니가 가장 좋았다. 그녀의 지혜와 통찰력에 감탄한다. 명대사도 많은데, 그 중 한 장면을 꼽아보고 싶다.  "내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모든 사람이 다 동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는 내 삶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 순간 나는 할머니가 미웠다. ... 나는 돌아서서 할머니를 쏘아보았다. "사람들은 원래가 복잡한 거란다. 복잡하지 않은 사람들은 따분한 사람들뿐이야." "그럼 저도 따분하겠네요."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주인공이 퍼스트 레이디라는 점은 사실 작품의 핵심은 아니다. 실제 영부인 생활은 후반부에 아주 조금만 나오니까.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셀링 포인트로 잡은 것 같다. 원제는 "American Wife"이다. 실존 인물이 모델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재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