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의 게시물 표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2026. 6. 4. 존 핀의 <해빗 메카닉>에서 인간은 습관으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한다. 인간 행동의 98퍼센트는 무의식적인 습관에 따라 행해진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일종의 자동화 기계와 같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로 독서모임을 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한 줌의 가능성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는 것 뿐이다. <해빗 메카닉>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습관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당신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책으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2026. 6. 1. 나의 모든 기쁨, 나의 모든 비극은 이탈리아에서부터 온다. 아름다움이 늘 궁지에 몰리는 땅에서 내가 왔다. 장 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를 시작하는 주인공의 말이다. 아름다움이 궁지에 몰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탈리아가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일 터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피렌체, 로마, 그리고 토스카나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탈리아의 이곳 저곳을 누비는 주인공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읽는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주인공은 난쟁이로 태어난 천재 조각가인데, <양철북>이라던가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등장한 난쟁이 인물이 떠오른다. 난쟁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것은 치트키이다. 미천한 주인공은  마을 귀족의 별종 막내딸 비올라와 아름다운 우정을 키운다.  뻔한 설정이다.  다른 인물들이나 사건의 구도 등도 어디서 많이 본 설정들로 가득하지만,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다채로워서 괜찮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친구같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작가의 이야기솜씨가 대단해서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20세기 이탈리아 역사의 주요 사건들이 주인공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등장인물들도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언쟁을 벌인다. 결국 파시즘을 돌파해내는 주인공과 비올라의 묘책에 감탄했다.  어지간한 영화보다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결말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뻔한 해피엔딩으로 끝냈더라면 촌스러울 뻔했다. 

손글씨 예찬

2026. 5. 28. 디지털 ADHD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이다. 정말이지 내 정신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종이에 펜으로 손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분명한 효과를 느꼈다. 이제는 매일 출근하자마자 새 종이를 펴고 손글씨를 쓰면서 시작한다. 손글씨는 정신을 정돈하는 의식과 같다. 글을 쓰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재벌회장들이 괜히 서예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험의 멸종>에서도 손글씨를 예찬한다. 손글씨는 일종의 그림그리기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손과 손가락은 물론 팔뚝의 기민성까지 요구한다. 그 수고에 미덕이 있다. 손으로 글쓰기에는 뼈와 살, 펜과 종이라는 실체가 존재하기에, 우리가 형체를 가진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당장 실행해보라. 물론 당신에게 잘 안맞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그것은 시기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중에라도 다시 시도해보라.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2026. 5. 21. 로버트 M. 새폴스키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인데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매우 실망스럽다. 소로스는 <금융의 연금술>이라는 책에서 지퍼 이론을 말한다. 미래로 가는 길에는 수만가지 가능성의 분기점이 열려있지만, 현재에 이뤄지는 선택들이 그 중 하나의 경로를 확정짓게 되고, 과거를 돌이켜보면 오직 하나의 경로만이 보이게 되는데 그것이 외길처럼 보인다. 그 모양이 마치 지퍼가 채워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혹시 새폴스키는 과거가 하나의 경로처럼 보이는 것을, 사후적 관점에서 필연이라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닐까?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테드 창의 의견을 좋아한다. 자유의지란 허상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은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자유의지를 실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의견을 선택하겠다.

부끄러워서 분발한다

2026. 5. 20. 세미나에서 약 5분간 발표를 부탁받아서 정말 부담없이 자료를 준비했다. 나는 가장 마지막 순서였는데, 앞서 발표한 팀들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슬라이드를 준비해왔고 내가 준비한 자료에 비해 더 풍성했다. 내 슬라이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부담없이 준비한 것은 안일한 판단이었다. 말로 잘 때우긴 했지만 부끄러워서 속이 쓰렸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자책하면서 괴로워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그저 더 잘하자는 생각이다. 부끄러움이 느껴지면 더 잘하자고 되뇌인다.  실행과 관측, 그에 따른 피드백이 삶의 전부라는 생각이다. 나는 실수를 했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삶을 생생하게 살아가니까 생긴 일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실수도 없고 불편함도 없는 삶은 그냥 죽은 삶이지 않을까.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것은 안된다. 

지옥에서 탈출하는 글쓰기

2026. 5. 15.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를 읽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등장하기 때문에 반가웠다. 이 작품에서는 허클베리와 같이 모험을 떠나는 흑인 노예 짐이 주인공이다.  헉과 짐의 여정은 흥미롭다. 미국 곳곳의 사람들과 풍경들이 생경하면서도 재미있고, 빠른 전개에 지루할 틈이 없다. 어느 사기꾼 듀오와 만나는 장면은 블랙 코미디여서 출근길에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고 말았다.  짐은 자신이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노예로 살아야 하는 미국은 그에게 지옥이다. 짐의 시선을 통해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모든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노예제도는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이다. 영화 <노예 12년>이 생각나기도 했다.  짐은 긴 여정을 거치는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글을 써야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험난한 모험 중에도 작은 연필을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노예는 연필을 소유할 수 없었기에 그 연필은 누군가의 목숨 값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그는 자유를 쟁취할 힘을 얻는다. 짐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고 더 좋은 펜을 소유한 나로서는, 글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시시피 강변 어딘가에서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말려가면서 몽당 연필로 글을 쓰는 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펜을 잡는다.

이탈리아어 라디오

2026. 5. 9. 이탈리아어 공부를 위해 여러가지를 하지만 라디오를 듣는 것도 재미있게 하고 있다.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인 RAI에서 친절하게 라디오 앱을 출시하고 있다.  여러가지 방송이 있다. 음악방송도 있고, 성우가 낭독을 해주는 방송도 있다. 그래도 역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이다. 책에 대한 토크쇼가 가장 내 필요에 부합하는 것 같아서 듣기 시작했고 출퇴근길에 반복청취하고 있다. 집중하고 들을 때도 있고 BGM처럼 화이트노이즈로 듣기도 한다. 알아듣느냐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알고 있는 단어나 표현들이 문득 문득 귀에 들어오는 수준이다. 알아듣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분명히 의미가 있다. 나의 언어중추는 반복되는 청취로부터 통계적 유의성을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영어를 처음 배울때도 AFN 라디오를 항상 들었고 가끔 케이블방송의 CNN뉴스채널을 멍하니 바라봤었다. 당연히 못알아들었었지만 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었다. 누적된 인풋의 힘을 믿는다. 

정치와 사업

2026. 5. 8. 조너선 카우프만의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의 종장을 읽었다. 상하이의 두 가문은 일본에 시달리고 국민당에 시달리다가 공산당이 들어온 후 파국을 맞는다. 공산당 지배 하 상하이의 몰락은 <상하이를 떠나는 마지막 보트>에서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자본주의가 번성하던 상하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였고 필라델피아와 유사한 인상을 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극심한 빈부격차가 지속되었고 이는 결국 공산주의를 불러들이는 씨앗이 된다. 상하이에서 거대한 부를 일궈낸 두 가문은 사회적 책임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행하지만 공산주의 하에서 돌아오는 것은 비난 뿐이다. 그들은 많은 재산을 잃고 떠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정치적 급변으로부터 무사할 수는 없다는 교훈을 얻고, 그건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적 재산보다는 정신적 재산이 중요하다. 물질은 빼앗길 수 있지만 정신은 빼앗길 수 없다. 올바른 정신과 사업수완이 있다면 물질은 복구할 수 있다.

아들 사랑

2026. 5. 7. 14개월 아기인 아들이 나를 많이 사랑한다. 내가 출근하면 크게 울면서 나를 잡는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우는 걸 아내가 달래러 가면 아빠 오라고 한다. 내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는다. 나는 잠이 모자라서 죽을 맛이지만 내 품에 안긴 아기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아들이 없는 편안한 밤을 내게 준다고 하면 나는 거부할 것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책

2026. 4. 30. 조너선 카우프만의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기 전 상하이에 번성했던 자본주의 세계를 조명해주는 책이다. 이야기는 바그다드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살던 서순 가문이 정치적 급변으로 맨몸으로 탈출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제로에서부터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실화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이런 모험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슈독>의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도 비슷한 설레임을 느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린 지도, 다른 사람이 밟던 길을 따라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건 내 여행이고 내 인생이다. 내겐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멋진 말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다.  그 두근거림이 주는 에너지로 내 삶을 바꿔야 한다. 

공간의 힘

2026. 4. 11. 오랜만에 모교회에 들렀다.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던 것도 좋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움직인 것은 성전 우측, 성가대석 뒷편의 스테인드 글라스였다.  나는 성가대석에 앉아 스테인드 글라스가 내 손바닥에 만들어내는 색색의 빛깔을 발견하는 것을  항상   사랑했었다. 자연스럽게 이 교회에 처음 등록해 어색하던 시간들,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노래하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 모든 추억들을 단숨에 되살린 것은 이 공간의 힘이다. 이 공간을 사랑하는 건, 내가 여기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시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공간이 오랫동안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2026. 4. 9. 포기하면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은 상투적이다. 너무 많이 말하고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뻔해서 이 말을 듣고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 말에 정보값이 없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실제로 포기한 때도 많았다. 어느 시점에 내 삶이 지리멸렬해지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야 경고등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포기하면 안된다는 말은 내게 힘을 준 적이 없었다. 아들을 얻고서는 삶을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서는 내가 포기하면 나를 지켜보는 사람은 더 빨리 무너진다고 했다. 포기하면 안된다는 말은 새로운 힘을 얻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가 샘솟는다. 

펑안을 기도한다

2026. 4. 3. 닐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를 읽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2차세계대전 당시의 인종주의, 그리고 무자비한 살육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담담하게 팩트만 말하는데도 충격적이다. 사람의 목숨이 이토록 쉽게 다뤄질 수 있을까? 영아 살해까지 서슴치 않는 잔인함에 치가 떨린다. 퍼거슨은 그 전쟁이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악과 악의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추축국의 만행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연합국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서도 구한말부터 한국전쟁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허망하게 죽었던가. 온 세계가 미쳐있었던 것 같다. 인류 전체의 역사를 볼 때 100년 전은 매우 가까운 시점이다. 20세기 말에 내가 누려온 평화로운 세계가 예외적인 상황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평안을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말에 상처받지 않는 법

2026. 3. 29. 살면서 타인의 말에 상처받은 경험이 여러번 있다. 그 말이 부당한 것은 둘째 치고,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길래 그런 말을 했을까 싶고, 즉시 면박을 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그러나 요즘 내가 깨달은 것은,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정상적인 멘탈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 수준이 낮은 사람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멘탈이 무너진 사람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처받은 나만 손해이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면 바로 잊어야 하고,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의 멘탈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유념하고 대비해야 한다. 나 또한 멘탈이 불안할 때 실언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잘 안다. 인간은 모두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존재이다. 사람을 긍휼히 여기되,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단단하게 무장해야 한다. 자신의 멘탈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를 지켜야 너를 지킨다

2026. 3. 24. 크리스 휘타커의 <나의 작은 무법자>를 읽었다. 주인공인 소녀는 스스로를 무법자로 규정하고 고난을 헤쳐나간다. 소녀를 응원하며 읽게 된다. 자꾸만 슬픈 일이 생기는 전개 때문에 마음이 힘들면서도 작가의 이야기솜씨는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한다. 해피엔딩이라서 만족했다.  읽는 내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망가진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은 반짝이며 빛나지만, 그 고통을 굳이 겪어야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짜 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모두들 삶이 엉망진창이다. 내가 내 삶을 지켜내지 못하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다시 생각한다. 

휴일 출근

2026. 3. 22. 추진하는 업무에 차질이 생겨 주말 연이틀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사무실은 평소와는 다른 공간이다. 나만의 시간이다. 본래 철저한 워라밸을 추구했었고 휴일 출근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나 모르텐 알베크의 <삶으로서의 일>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추구하는 의미를 위해서는 휴일없는 근무도 기꺼이 할 수 있다. 워라밸에 집착했던 태도는 의미를 찾지 못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회사가 내게 맡겨준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내게 큰 의미를 가진다. 몸은 좀 힘들지만 약간 즐겁기까지 해서 나 자신이 생경하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핏을 모방하는 일

2026. 3. 18. 워렌 버핏은 그의 투자 철학과 방법을 수없이 많은 매체를 통해 설파하였다. 그의 가치 투자 방법은 그 놀라운 성과로 인해 찬탄을 자아낸다. 투자를 처음 접하고 십년이 넘게 그를 모방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을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실행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잘 되지 않았다. 마치 레시피를 알아도 요리의 맛을 따라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탄생>을 읽고서야 진정으로 버핏의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투자를 진정으로 실행하려면 투자 성과에서 평가손익을 철저하게 무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주식APP을 무시해야 한다. 내 장부에는 매입금액으로만 주식 보유액을 기재한다. 매입금액은 변하지 않기에,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 되어준다. 배당으로 인한 현금 유입 또는 확정된 매도손익만이 내 장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머지는 내 보유기업의 경영성적을 지켜보는 일 뿐이다. 이것이 버핏이 말한 장기 투자이다. 

기록에 집착하는 삶

2026. 3. 12. <아인슈타인의 전쟁>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실제로 입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사고 실험 만으로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내는  자유분방한 망나니형 천재 아인슈타인과, 청빈한 사명감의 실험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의 캐릭터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전쟁의 광풍 속에서 반전주의를 고집한 평화주의자였고, 대세에 거스를 줄 아는 용기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서로 적대하는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위대한 업적을 완성하기 위해 서로를 반드시 필요로 했다. 에딩턴이 상대성 이론을 입증하기까지 천신만고를 겪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다. 마침내 그들이 해후했을 때도 그들의 만남은 그저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에딩턴은 광적으로 기록에 집착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각종 일지를 통해 그의 삶을 다시 조명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그가 기록에 집착한다고 한 대목에서 반가움을 느꼈다. 나 또한 기록하기를 무척 좋아하니까. 누군가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생각은 두렵기도 하지만, 어떤 사명감을 주기도 한다. 내 아들이 나의 삶을 알게 되었을 때,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이 마음은 이제 나의 등불이 된다.

업무도 내 사업처럼

2026. 3. 11. 리루가 쓴 <문명, 현대화 그리고 가치투자와 중국>을 읽는데 심히 공감되는 구절을 만났다. 투자를 할 때는 사업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은 바램이 있었기에 반가운 구절이었다. 좋은 투자자가 되려면 좋은 사업가가 되어야 한다. 그 반대로 생각해도 말이 된다.  문득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회사의 업무에도 똑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업무도 내 사업처럼 해야 한다. 좋은 사업가가 되려면 지금 주어진 업무부터 좋은 사업가처럼 해야 한다. 업무에 임하는 마음이 다를 것이다. 언젠가 내 사업을 하게 되면 열심히 할거야, 그치만 지금은 그냥 설렁설렁하겠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만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태도가 본질이라는 말이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업무도, 투자도 내 사업을 한다는 태도로 임해야겠다. 

독서평: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Steven C. Hayes, Spencer Smith, 학지사)

일단 제목의 의미부터 생각해보자.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 우리는 마음에 들어가 있어서 삶에서 분리되어 있는 걸까? 바로 그렇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속이 상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그 중에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생각들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 이 책을 펼쳐들고 저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1. 고통은 비교하고 판단할 때 온다. 2. 그 판단은 대부분 오류이다. 내 마음은 나를 속인다! 3. 메타인지를 사용해서 벗어나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겪어온 많은 심적 고통이 설명된 것 같아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비종교적이면서도 영성이 가득한 느낌이다. 진정한 삶은 고통조차 기꺼이 경험하는 삶이라는 것을 느꼈다.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더 알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 당신이 책을 읽고 싶어지도록 몇 가지를 더 소개하겠다. 인간의 언어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라는 통찰이 강렬하다.  관계지어 생각하도록 하는 그 힘이 인간을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고통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내 고통을 기록해보도록 한 시험지도 좋았다. 고통을 손님처럼 생각해라.  기꺼이 경험하기는 좋은 것을 느끼려는, 미화하는 마음이 아니다. 생생하게 느끼려는 마음이다. 불편을 기꺼이 수용하고 생각에 낚여들지 않으며,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삶 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융합'이라고 한다.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탈융합'이라고 한다.  융합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에 적용되고 중지할 수 없는 것이 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가 언제 자신의 생각과 융합되어 있는지를 알려 주는 몇 가지 단서들이 있다.  생각이 오래되고 익숙하며 생생하지 않게 느껴진다. 생각 속에 ...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

2026. 3. 8.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항상 후순위여야 한다. 내 삶을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타인은 거의 없다. 사람은 서로의 환경이 된다. 내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나 또한 그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들에게 나는 적당히 실패하고 있는 친애하는 동료이다.  그들은 변치않는 우정을 원한다.  내가 그대로 있기를 무의식적으로 원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는 변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가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들의 기대에 무너지면 안된다. 내가 변하는 것이 싫어서 압력을 가해올 수도 있다.  "너 왜그래? 너 같지 않게." 이 때 그것을  무시하거나 그들과 멀어지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변화 폭이 클수록, 타인들은 싫어할 것이다. 아마 가까운 가족만이 나의 큰 변화를 견뎌줄 것이다. 혈연은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중요하지만,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막아서는 안된다. 내 삶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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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자폐인이 주인공이라니까요.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운 사람의 내면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작가 본인이 자폐아동을 양육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의 무대는 자폐인들도 기술의 발전을 통해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가상의 미래입니다. 주인공을 포함한 일군의 자폐인들이 고소득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단 자폐인들의 생활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열심히 일하다가도 급격히 불안해져서 강박적인 활동을 하러 가곤 합니다. 트램폴린에서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뛴다던가... 일반인들이 어떤 이유로 주인공에게 화를 낼 때, 주인공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 두려워합니다. 몸이 뻣뻣하게 굳고 목이 죄어들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주인공과 만나고 교류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따뜻합니다. 자폐인이 보이는 어색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용력이 있고 여유롭습니다. 그들은 주인공의 돌발행동을 참아주면서, 강요하지 않는 배려심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모습 때문에 읽는 저까지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주인공은 어느 여성과 핑크빛 무드를 형성하기까지 하거든요. 주인공을 응원하는 마음에 신바람이 나서 읽었지만.. 자폐인 특성으로 인해, 주인공은 명언을 자주 날립니다.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왜일까요? 나는 '노력은 행동과 같지 않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거듭 떠올린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만이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가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하기도 해요. 부모님 말씀이죠. 저는 돈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삶을 예측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쓰든, 삶은 이 세상보다 조금도 더 예측 가능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세상은 무질서하다. 작품의 절정에는 기술이 더더욱 발전하여, 주인공의 자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주인공과 자폐인 동료들은 그 수술을 받아야 할지,...

남편으로서의 생각, 다짐

아내를 생각한다. 아내는 나를 선택했다. 나도 아내를 선택했다. 그녀의 선택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결혼은 중차대한 일이다. 신중한 우리는 그만큼 늦었고 우리의 선택은 확신이다. 의무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아내를 기쁘게 해줄 것이다. 그녀는 무엇을 좋아하지? 아내에 대해 잘 알긴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부분도 많다. 더 알고 싶다. 사랑하면 궁금하다. 아내에게 자주 꽃을 사줄 것이다. 꽃은 그녀를 행복하게 한다. 아내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아내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할 것이다. 아내에게 자주 자유를 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더 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주말에는 육아에서 잠깐이라도 해방될 시간을 줄 것이다. 아내를 예쁜 꽃처럼 키울 것이다. 아내의 기분은 지금 어떻지? 그녀의 고민들은 무엇이지? 궁금해하면 알 수 있다. 관찰하기만 해도 되고, 혹은 직접 물어보면 알려줄 때도 있다. 가끔 말하지 않는 일들도 있지만 그녀의 기분과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알 수 있다. 모르겠으면 더 살필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어렵다. 사랑하면 쉽다. 지금 만약 어렵다면 사랑이 모자란 것이다. 더 사랑해면 된다. 이것이 내 다짐이다.

회사에 대한 생각, 다짐

이 회사가 좋아서 들어온 것은 아니다. 내가 추구하던 다른 목적을 위해 잠시 머무르려는 선택이었고, 깊은 고민은 없었다. 그 목적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져 버렸고, 나는 이 회사에 생계를 의존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회사는 나를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해주었고, 중요한 일들을 나에게 맡겨 주었다. 내가 그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에도, 회사는 나를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절고 있을 때 동료들이 나를 참아주고 품어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회사에 빚을 졌다. 내가 이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그 빚을 갚으려 한다. 개인적인 승진이나 영달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자존심을 내세울 일도 없다. 이 회사가 나라는 사람을 만나 정말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부끄러운 순간들도 많고 실수도 많았지만, 과거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과거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것으로 갚는다. 자존심을 내세울 여지도 없다. 겸손함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러나올 것이다. 신이여 나를 도우소서.

듀오링고: 700일 연속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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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저는 이탈리아어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부라 부르기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듀오링고를 플레이하고, 이탈리아에 접촉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멈추지만 마세요. 당신의 뇌를 믿어보세요. Buona Fortuna!

돈에 대한 생각, 다짐

돈에 대해 생각한다. 돈은 내 생명과 바꾼 어떤 물질이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기 때문이다. 돈은 먹고 사는데 반드시 필요하고, 나의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요소이다. 돈은 나를 불행으로부터 막아주는 보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돈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 특히 소득보다 지출이 많아지지 않도록 소비를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다. <단단한 삶> 에서는 돈은 본래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맞다.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돈은 시간보다 중요하지 않다. 귀한 시간을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 돈이 많아졌다고 해서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은 소득에 관계없이 일정하기 때문이다. 사치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돈이 많아져도 삶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 돈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돈이 많아진다고 달라질 삶이라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의 삶을 돈이 아주 많은 상태라고 상상하면서 꾸려나가본다면, 돈이 아주 많아졌을 때에도 나는 삶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복권 당첨자가 삶이 망가진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돈을 다룰 준비를 하지 않고 살아온 삶이 결국 돈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올바른 마인드를 갖지 못하면, 내가 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돈에게 지배당할 수도 있다. 주식계좌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정신의 아주 일부만 사용해야 한다. 호가창의 깜빡거림과 내 평가잔고의 손익표기를 자꾸 쳐다보면 인지적 착각이 일어나고 홀리듯이 매매를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돈이 부족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겨내라. 나는 돈이 부족할 수 없다고 믿는다. 내가 금융시장에 참여하기 때문이고, 내가 지적인 사고방식을 지속하고 멘탈 단련도 계속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지식과 지혜로 채워진다면 돈이 없을 수가 없다. 마지막...

육아로 되살아나는 사랑의 기억들

아기를 돌보는 일은 정말 품이 많이 든다. 씻고 닦아도 다시 더러워지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주저없이 울어제끼는 통에 당황의 연속이다. 나의 사정을 봐주는 일도 없어서 새벽에 깨어 한 시간 넘게 달래는 일도 다반사이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론이다.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아기에 대한 사랑이 그보다 더 크다. 아기라는 존재는 내게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느껴지기에, 그 촛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생각이다. 내가 못자고 못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아기를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아기에 대한 내 사랑은, 내가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 품어본 사랑보다 크다. 아기가 웃으면 세상이 내 것처럼 기쁘고, 아기가 울면 초조하고 걱정이 된다. 이런 생활을 하며 문득 문득 나 자신의 아기 시절을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나는 아기시절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다. 기억에 남아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이미 걸음마를 하고 말도 잘 하던 시절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남아 있는 것을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에도 나를 잘 돌봐준 손길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아기를 안고 먹이고 씻기며 나는 40여년 전 우리 부모님이 나를 안고 먹이고 씻기던 일을 생각한다.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면서, 아기인 나에게 베풀어지는 손길이 시간을 거슬러 그대로 느껴지는 것만 같다. 부모님이 나를 귀하게 여기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그 사랑을 피부로 느낀다. 내가 그것을 지금 직접 내 손으로 행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육아를 하며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늘 따뜻하다. 내가 그토록 귀한 아기였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내가 방황하던 시간들이 조금은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진정으로 깨닫는다. 아가야, 너를 무척 사랑한단다. 살아가면서 힘든 시간들도 있겠지만 부디 용기를 내어 이겨내길 바란다. 너에게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내가 지금 그러는 것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