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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감사일기가 잘 되지 않을 때

감사일기를 쓰면 좋다고 한다. 내 주변의 공동체에서도 자주 말하고, 인터넷에서도 감사일기를 검색하면 수많은 긍정적 경험을 접할 수 있다. 감사라는 감정은 분명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쉽지 않았다.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 내게 도덕적인 의무처럼 느껴진 것이다. 내가 우울증으로 바닥을 칠 때조차, 나는 육체적으로 질병이 없었고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며 경제적인 문제도 없었다. 감사일기를 쓰기 위해 이런 것들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나는 내 감정과 이성의 괴리를 느낄 뿐이었다. 그러니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데도 내 마음은 왜이리 엉망진창인걸까?

감사일기를 써야 한다는 당위성과, 감사일기를 통해 삶이 나아졌다는 주변의 증언들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떠올리는 감사는 머리의 차원에 머물렀고, 감사해야 할 것이 명명백백함에도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당혹스러웠다.

오랜 시간 방황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것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내가 그런 상태라는 메타인지조차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인식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감사일기의 효과를 되살려낸 계기는, 감사보다는 <기쁨>이라는 감정에 집중한 것이었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 기쁨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 집중해보라는 조언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감사일기 대신 기쁨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미 감사할 조건이 많은 상태에서도 기쁨이 없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날 하루 어떤 기쁨을 느꼈는지를 짚어보는 것은 생소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울하고 별로인 날도 기뻐할 일은 있었다. 그 당시 내가 적었던 기쁨일기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 마지막 남은 따릉이를 내가 맡게 되어 기뻤다.
  • 오늘은 노을이 예뻐서 기뻤다.
  • 오늘은 가기싫은 출장이 취소되어서 기뻤다.

아마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저 작은 불씨같은 기쁨을 쓰면서 상기하고 음미하는 것이 내 안에 기쁨을 더 밝게 했다. 내 안에 조금씩 기쁨이 많아졌다. 저런 일기를 일년간 쓰고 나자 나는 작은 일에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기쁨이 내 안에 차오르자 나는 감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머리로 하는 감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감사였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봐도 부유하고 잘 사는 나라이다.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면 감사할 일이 많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감사를 누리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혹시 이것이 기쁨의 부재 때문이 아닌지 생각한다. 나는 기쁨을 되살린 후에야 가슴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감사로 인해 삶이 충만해지기를 원한다면, 기쁨이 동반되는 감사를 누려보시기를 바란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Dio ti bened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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