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삐와

2026. 7. 21. 17개월 아들이 엄마, 아빠에 이어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삐와"이다. 나는 처음에 <아빠 미워>인 줄 알고 왜 그럴까 고민을 했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그 말이 사실은 <아빠 이리와>임을 알게 되었다. 말로 다할 수 없을만큼 기쁘다. 나도 아기 때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했을까?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기억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가보면, 아버지는 일하러 간다며 집에 자주 없었고, 내가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무기력한 삶을 사는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었다. 내 아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변화해 갈 것이다. 어쩌면 청소년기에는 나를 미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들아,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단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아버지가 나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부자가 아무리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내 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아들을 사랑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사랑도 재발견한다.

오펜하이머

2026. 7. 9. 카이 버드, 마틴 셔윈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이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원작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작품이든 책으로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에, 이번에도 영화보다는 책을 먼저 펼쳤다. 오펜하이머는 원래 부잣집 아들이고 천재였다. 그는 매우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관계에도 서툴러 친구도 많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그의 청소년기를 자세히 묘사하는데,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천재 소년일지라도 정신적으로는 극도로 피폐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그 시절 오펜하이머의 기행을 보면 아슬아슬하다. 인생을 망쳐버릴 뻔했던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오펜하이머를 구원한 것은 독서였다. 그는 지식인이었고, 다독가였다. 정신과 의사의 도움없이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독서의 힘이었다. 정신적으로 안정되자 그는 온화한 성격으로 변화하였고, 학자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치즘에 대항한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핵무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그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일류 지도자로 성장한다. 나 또한 정서적인 불안이 극심했던 시기를 겪었기에 오펜하이머의 경험이 낯설지 않았다. 나 또한 엄청난 독서를 통해 힘든 시기를 이겨낸 경험이 있어서 반가웠다. 아직도 가끔 불현듯 불안은 되찾아온다. 오펜하이머 같은 사람도 같은 불안을 극복해야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에게 용기를 준다. 오펜하이머의 불안 치료법은 걷는 것이었다고 한다. 나도 지금 일어서 걸어야겠다.

한범이

2026. 7. 3.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부반장이었다.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이 정하신 것이다. 반장은 집이 좀 살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외향적인 애였지만 나랑은 잘 안맞았다. 난 그저 고교입시에만 집중하느라 바빴고, 나만 생각하는 미숙한 중학생이었다.  우리 반에는 한범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눈이 약간 사시였고 걸을때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공부랑도 거리가 멀고 약간 어수룩했다. 눈 부근이 항상 부은 모습이어서 아이들은 밤탱이라고 그 친구를 놀렸다. 특히 반장 녀석이 좀 집요하게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한범이는 놀림을 받으면 발끈해서 요즘말로 타격감이 좋았던 모양이다. 가끔 도가 지나치면 울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반장과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 별다른 개입은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이런 사정을 알았는지 한범이를 케어하는  역할을 나에게 자주 맡기셨다. 소풍 같은 활동 시에는 한범이를 데리고 다녔고, 한범이의 실업계 고교 지원 원서를 내는데 따라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상당히 귀찮았고 녀석에게 큰 관심이 없었지만 최소한 그를 괴롭히지는 않았기 때문인지 한범이도 날 편하게 생각했다. 한범이는 영어 필기체로 자신의 이름을 아름답게 쓸 줄 알았고(그것밖에 못하긴 했다) 나는 그걸 따라하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 후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애초에 난 걔를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후 동네에서 한범이를 마주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서로 인사는 했지만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고 돌아섰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변함없이 어수룩했지만 그늘져보이진 않았고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벽에 잠이 깬 아들을 재우느라 옆에 누워있을 때 문득 30년 전 그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도시락을 챙겨서 등교했었다. 누군가 그를 보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그를 먹이고 입히고 씻겼을 것이다. 내가 지금 내 아들에게 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땐 왜...

모순이 힘이다

2026. 7. 2. 인간은 모순 을 품은 존재다. 모순이 없는 인간은 없다. 어떤 사람이 모순된 면모를 보이면 비난하는 것은 그 자신의 모순이 들통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모순을 피할 수 없다면 모순을 힘으로 써야 한다. 모순을 품어내고 극복한 사람은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모순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는 소인배이다. 자기 자신의 모순조차 모르거나, 알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윌리엄 테일러는 <차별화의 천재들>에서 창조적 성격은 모순된 특성을 동시에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겸손한 동시에 자부심을 가지라. 조심스럽게 과감하라. 장난스러운 동시에 규율을 갖추라.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동시에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라. 절약하되 낭비하라. 기대를 버리되 기대하라. 미워하면서 사랑하라. 이상하게 들리는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모순을 품어내는 사람이 승리한다.

여성 노인을 만나다

2026. 6. 30.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 인구>를 읽었다. < 어둠의 속도 >를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무대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아주 먼 미래, 인류가 우주 곳곳으로 이주하는 세상이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강제 이주가 시행되자 모종의 결단을 내린다. 오필리아가 홀로 서는 초반부의 심리 묘사가 재미있다.  진짜 이야기는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으로부터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외계 생명체가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약간의 고비가 있었다. 외계 생명체의 외양 묘사나 그들이 쓰는 언어들이 내게는 잘 와닿지 않는다. 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외계 생명체와 관계를 형성하고 난 이후 이야기가 다시 좀 재미있어진다. 결말도 마음에 든다. 나는 여성이 만든 여성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작품은 특히, 노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기에 읽을 가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노년의 여성은 무가치한 존재로 간주되기 쉽지만 작가는 거기에 반기를 들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의 의도는 성공했다. 

자기객관화의 필요성

2026. 6. 25.  전 국민의 주목을 받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처구니 없는 실패를 하거나 망신을 당하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자리에 선임될 때 논란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러한 실패가 더 뼈아프게 느껴진다.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은 스스로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리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자기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능력,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올바르게 처신할 수 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동안 제대로 자기객관화를 하지 못했다면 리스크를 계속해서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날의 실패와 좌절은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 기회를 적절하게 이용하지 못한 것은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세상은 자기객관화를 방해한다. 계속되는 성공으로 인한 주변의 찬사는 달콤하다. 성공이 실패보다 더 위험하다. 성공에 안주하면 안된다. 늘 깨어있으라는 말은 그래서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C'è ancora do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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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24.  출장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를 보았다. 이탈리아 영화라서 선택했다. 이탈리아어 대사를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딱히 기대를 갖고 보진 않았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영화는 1950년 경 이탈리아 남부 어느 마을의 풍경을  흑백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촌티가 팍팍나는 시골 마을, 패전 직후의 궁핍한 모습이 한국의 옛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나로선 시간여행까지 경험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가정주부 델리아는 아내이자 어머니이다. 살림을 도맡으면서도 여러가지 부업으로 돈을 벌어오는 사실상의 가장이다. 무능한 남편, 병상의 시아버지, 다 큰 딸과 말썽쟁이 두 아들은 모두 그녀만 바라보고 사는 것 같다. 어느 날 그녀에게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하고, 그녀는 이 삶에서 탈출할 결심을 한다. 계속해서 도망칠 기회를 엿보는 델리아를  지켜보는 관객은 계속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탈출하기까지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 와중에 딸 의 약혼식은 잘못될 수 있는 모든 일이 잘못되면서 관객을 괴롭힌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그녀가 쟁취한 것은 관객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의도적으로 관객을 속인 셈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는데, 찾아보니 주연 여배우인 파올라 코르텔레시가 감독이었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만드는 여성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가 좋은 이유도 알 것 같다. 델리아의 남편은 무능한 주제에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고 피해의식도 강한 모습이다.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비춰질까? 우리 남성들은 늘 서늘한 마음으로 경계해야 한다.

새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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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23. 일년만에 다시 코펜하겐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던 터라 감회가 새로웠다.  도시는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모습이었다.   새로운 도시에서는 항상 그 곳에 사는 새들을 찾아보게 된다. 작년에 만난 오리가족이 생각나서 그 호수공원을 다시 찾았다. 역시나 새로운 가족이 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더니 그들은 손닿을 거리까지 다가왔다. 짜릿한 기분이 들었고, 새들을 놀래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동물들이 가족을 이룬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의 행복을 비는 것은, 사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다.

승부를 받아들이고 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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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16.  영화 F1을 뒤늦게 봤다. 레이싱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아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도전이 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소니(브래드 피트)는 20년 전 촉망받는 신인이었지만, 모종의 사고로 현장을 떠난 레이서이다. F1으로 돌아올 기회를 만나자 그는 승부를 건다.  그를 맞아 들인 팀은 패배에 익숙해져서 싸우는 법을 잊은 상태이다. 그는 팀을 도발하고 자극하여 변화시킨다. 당연히 갈등이 발생하지만 사람들은 소니에게 감화되고 팀은 강해진다. 이런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소니는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한다. 통념을 깨뜨리고 규칙을 어기는 것까지 팀 승리의 전략으로 활용한다. 그는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그는 다른 차량과의 충돌도 불사하고, 도그파이트에 유리하도록 차량 재설계를 요구한다. 안전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엔지니어에게 승리보다 안전이 중요하냐고 되묻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매튜 매커너히는 <그린라이트>에서 무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규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가끔은 규칙을 어겨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 규정된 선, 안전선을 넘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것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선을 넘는 결정은 베팅과 같다. 처벌받을 가능성과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을 견줘봐야 한다. 그래서 소니는 경기에 나설 때 트럼프카드를 무작위로 한장 가져간다. 인생이 나에게 내미는 패가 무엇이든, 승부를 받아들이고 싸우겠다는 의지이다. 패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패를 들고 싸우기 위한 전략, 싸워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나에게 쓰는 편지

2026. 6. 13.  어떤 친구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고 했다. 내가 그 일기를 다시 읽느냐고 했더니 그는 아니라고 했다. 읽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죽은 후에는 누군가가 그 일기를 읽게 될텐데 결국은 다시 읽히는 날이 오는 것 아니냐고 했고 그는 그런 가능성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읽히지 않을 글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읽히지 않은 채 사라진다면 그 글은 존재한 적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글은 누군가에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나 자신에게라도 다시 읽혀야 한다.  김동조 선생은 자신이 읽고 싶은 글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본인의 글을 가장 많이 읽는 것은 자신이라고 했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이어야 타인에게 보여줄 가치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 나는 과거의 내가 보내온 편지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꺼내본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2026. 6. 4. 존 핀의 <해빗 메카닉>에서 인간은 습관으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한다. 인간 행동의 98퍼센트는 무의식적인 습관에 따라 행해진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일종의 자동화 기계와 같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로 독서모임을 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한 줌의 가능성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는 것 뿐이다. <해빗 메카닉>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습관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당신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책으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2026. 6. 1. 나의 모든 기쁨, 나의 모든 비극은 이탈리아에서부터 온다. 아름다움이 늘 궁지에 몰리는 땅에서 내가 왔다. 장 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를 시작하는 주인공의 말이다. 아름다움이 궁지에 몰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탈리아가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일 터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피렌체, 로마, 그리고 토스카나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탈리아의 이곳 저곳을 누비는 주인공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읽는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주인공은 난쟁이로 태어난 천재 조각가인데, <양철북>이라던가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등장한 난쟁이 인물이 떠오른다. 난쟁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것은 치트키이다. 미천한 신분의 주인공은  마을 귀족의 별종 막내딸 비올라와 아름다운 우정을 키운다.  뻔한 설정이다.  다른 인물들이나 사건의 구도 등도 어디서 많이 본 설정들로 가득하지만,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다채로워서 괜찮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친구같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작가의 이야기솜씨가 대단해서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20세기 이탈리아 역사의 주요 사건들이 주인공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등장인물들도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언쟁을 벌인다. 결국 파시즘을 돌파해내는 주인공과 비올라의 묘책에 감탄했다.  어지간한 영화보다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결말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뻔한 해피엔딩으로 끝냈더라면 촌스러울 뻔했다. 

손글씨 예찬

2026. 5. 28. 디지털 ADHD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이다. 정말이지 내 정신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종이에 펜으로 손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분명한 효과를 느꼈다. 이제는 매일 출근하자마자 새 종이를 펴고 손글씨를 쓰면서 시작한다. 손글씨는 정신을 정돈하는 의식과 같다. 글을 쓰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재벌회장들이 괜히 서예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험의 멸종>에서도 손글씨를 예찬한다. 손글씨는 일종의 그림그리기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손과 손가락은 물론 팔뚝의 기민성까지 요구한다. 그 수고에 미덕이 있다. 손으로 글쓰기에는 뼈와 살, 펜과 종이라는 실체가 존재하기에, 우리가 형체를 가진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당장 실행해보라. 물론 당신에게 잘 안맞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그것은 시기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중에라도 다시 시도해보라.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2026. 5. 21. 로버트 M. 새폴스키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인데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매우 실망스럽다. 소로스는 <금융의 연금술>이라는 책에서 지퍼 이론을 말한다. 미래로 가는 길에는 수만가지 가능성의 분기점이 열려있지만, 현재에 이뤄지는 선택들이 그 중 하나의 경로를 확정짓게 되고, 과거를 돌이켜보면 오직 하나의 경로만이 보이게 되는데 그것이 외길처럼 보인다. 그 모양이 마치 지퍼가 채워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혹시 새폴스키는 과거가 하나의 경로처럼 보이는 것을, 사후적 관점에서 필연이라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닐까?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테드 창의 의견을 좋아한다. 자유의지란 허상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은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자유의지를 실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의견을 선택하겠다.

부끄러워서 분발한다

2026. 5. 20. 세미나에서 약 5분간 발표를 부탁받아서 정말 부담없이 자료를 준비했다. 나는 가장 마지막 순서였는데, 앞서 발표한 팀들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슬라이드를 준비해왔고 내가 준비한 자료에 비해 더 풍성했다. 내 슬라이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부담없이 준비한 것은 안일한 판단이었다. 말로 잘 때우긴 했지만 부끄러워서 속이 쓰렸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자책하면서 괴로워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그저 더 잘하자는 생각이다. 부끄러움이 느껴지면 더 잘하자고 되뇌인다.  실행과 관측, 그에 따른 피드백이 삶의 전부라는 생각이다. 나는 실수를 했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삶을 생생하게 살아가니까 생긴 일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실수도 없고 불편함도 없는 삶은 그냥 죽은 삶이지 않을까.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것은 안된다. 

지옥에서 탈출하는 글쓰기

2026. 5. 15.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를 읽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등장하기 때문에 반가웠다. 이 작품에서는 허클베리와 같이 모험을 떠나는 흑인 노예 짐이 주인공이다.  헉과 짐의 여정은 흥미롭다. 미국 곳곳의 사람들과 풍경들이 생경하면서도 재미있고, 빠른 전개에 지루할 틈이 없다. 어느 사기꾼 듀오와 만나는 장면은 블랙 코미디여서 출근길에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고 말았다.  짐은 자신이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노예로 살아야 하는 미국은 그에게 지옥이다. 짐의 시선을 통해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모든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노예제도는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이다. 영화 <노예 12년>이 생각나기도 했다.  짐은 긴 여정을 거치는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글을 써야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험난한 모험 중에도 작은 연필을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노예는 연필을 소유할 수 없었기에 그 연필은 누군가의 목숨 값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그는 자유를 쟁취할 힘을 얻는다. 짐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고 더 좋은 펜을 소유한 나로서는, 글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미시시피 강변 어딘가에서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말려가면서 몽당 연필로 글을 쓰는 짐의 모습을 떠올리며 펜을 잡는다.

이탈리아어 라디오

2026. 5. 9. 이탈리아어 공부를 위해 여러가지를 하지만 라디오를 듣는 것도 재미있게 하고 있다.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인 RAI에서 친절하게 라디오 앱을 출시하고 있다.  여러가지 방송이 있다. 음악방송도 있고, 성우가 낭독을 해주는 방송도 있다. 그래도 역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이다. 책에 대한 토크쇼가 가장 내 필요에 부합하는 것 같아서 듣기 시작했고 출퇴근길에 반복청취하고 있다. 집중하고 들을 때도 있고 BGM처럼 화이트노이즈로 듣기도 한다. 알아듣느냐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알고 있는 단어나 표현들이 문득 문득 귀에 들어오는 수준이다. 알아듣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분명히 의미가 있다. 나의 언어중추는 반복되는 청취로부터 통계적 유의성을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영어를 처음 배울때도 AFN 라디오를 항상 들었고 가끔 케이블방송의 CNN뉴스채널을 멍하니 바라봤었다. 당연히 못알아들었었지만 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었다. 누적된 인풋의 힘을 믿는다. 

정치와 사업

2026. 5. 8. 조너선 카우프만의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의 종장을 읽었다. 상하이의 두 가문은 일본에 시달리고 국민당에 시달리다가 공산당이 들어온 후 파국을 맞는다. 공산당 지배 하 상하이의 몰락은 <상하이를 떠나는 마지막 보트>에서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자본주의가 번성하던 상하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였고 필라델피아와 유사한 인상을 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극심한 빈부격차가 지속되었고 이는 결국 공산주의를 불러들이는 씨앗이 된다. 상하이에서 거대한 부를 일궈낸 두 가문은 사회적 책임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행하지만 공산주의 하에서 돌아오는 것은 비난 뿐이다. 그들은 많은 재산을 잃고 떠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정치적 급변으로부터 무사할 수는 없다는 교훈을 얻고, 그건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적 재산보다는 정신적 재산이 중요하다. 물질은 빼앗길 수 있지만 정신은 빼앗길 수 없다. 올바른 정신과 사업수완이 있다면 물질은 복구할 수 있다.

아들 사랑

2026. 5. 7. 14개월 아기인 아들이 나를 많이 사랑한다. 내가 출근하면 크게 울면서 나를 잡는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우는 걸 아내가 달래러 가면 아빠 오라고 한다. 내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는다. 나는 잠이 모자라서 죽을 맛이지만 내 품에 안긴 아기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아들이 없는 편안한 밤을 내게 준다고 하면 나는 거부할 것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책

2026. 4. 30. 조너선 카우프만의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기 전 상하이에 번성했던 자본주의 세계를 조명해주는 책이다. 이야기는 바그다드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살던 서순 가문이 정치적 급변으로 맨몸으로 탈출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제로에서부터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실화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이런 모험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슈독>의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도 비슷한 설레임을 느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린 지도, 다른 사람이 밟던 길을 따라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건 내 여행이고 내 인생이다. 내겐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멋진 말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다.  그 두근거림이 주는 에너지로 내 삶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