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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 (데이비드 미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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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습니다. 와, 정말 너무 재밌어요.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면서 재밌다고 느끼는 중입니다. 이 책을 펼치면 당신은 그 세계로 빨려들어갑니다. 당신은 에도 막부시대 말기, 나가사키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접촉이 허락된 데지마 섬에서 무역상인으로 일하는 "야코프 더주트"라는 네덜란드 사람이 됩니다. 1인칭 시점은 아니지만, 주로 야코프의 시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로만 서술을 제한하기에 이런 몰입감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그런 소설은 흔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가 일본인들보다 야코프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야코프의 사고방식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서구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들은 미스테리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일본 측 사람들은 의뭉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모두 친구이냐? 그것도 알 수 없죠.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를 모르는 애매함이 긴장을 최고조로 높여줍니다. 주인공은 정직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조직에 대한 양심을 지키며 정도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동료 직원들과 일본 측 통역관들은 주인공을 싫어하기도 하고 협박도 합니다. 이로 인해 느껴지는 긴장감이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러나 작가가 설계한 음모는 너무 음침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갑자기 작품이 무협지 수준으로 떨어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긴장감과 호기심은 오히려 커집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속도가 빠르고, 작가가 벌려놓은 문제들은 급하게 해결되는데 약간 당황스럽지만 또 나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해결이 최선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야코프와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화는 모든 것을 매듭짓는 장면입니다. 좋은 마무리입니다.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더더욱 재미있을 것입니다....

독서평: 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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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화 한 편 감상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 미스테리, 느와르, 로맨스, 성장소설 다 됩니다.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과거를 무대로 여성이 겪는 차별을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남자들만 할 수 있다는 다이빙에 이끌려 도전하지만 자꾸만 가로막힙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은 결국 실력으로 인정받고 이겨내지요. 이것만 보면 좀 뻔해보일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주인공을 둘러싼 다른 두 남자, 아버지와 갱스터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실종은 주인공의 삶에 큰 그늘을 드리우고, 실종 전 아버지와 만난 적이 있는 갱스터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미스테리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주인공. 뭔가 있다는 감이 팍팍 오는거죠.  그런데 여기서 그들은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제가 유교보이라 그런건지, 아버지의 원수이자 20살 정도 차이나는 갱스터 남자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네요. 저자도 딱히 설득력을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위험한 비밀을 가진 이성이라 더 매력적으로 보인걸까요? 죽은 것 같던 아버지는 알고보니…(스포일러 방지) 아버지의 원수인 갱스터는 알고보니 그냥 악인이 아니라 작가님이 내세운 제2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또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불안한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뒤로 갈수록 무리수가 등장합니다. 갱스터가 갑자기 사랑 하나만 붙들고 연습도 없이 잠수를 시도하는데… 읽으면서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약간 뜬금없기도 하고요. 제대로 교육도 안받고 잠수를 하니, 잠수병이 올만도 한데...(스포일러 방지) 어쨌든 재미 하나는 확실합니다. 

독서평: 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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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성실하게 잘 살던 한 남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연락이 끊겼던 그의 가족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누군지 모르겠다고 한다. 가족들이 갖고 있던 그의 옛 사진을 보니 다른 사람이다... 그 남자는 신분을 속였던 것이다! 변호사 기도는 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지하세계에는 신분교환이라는 행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그는 도대체 누구였던 것일까? 기도는 스스로의 정체성 문제 때문에 자신과 관계없는 이 사건에 집착하고. 마침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재미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미스테리 소설이지만, 철학적인 고민의 비중이 높아서 인상적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그 사람은 내가 되어 나의 삶을 이어서 살아간다? 그럼 나는 어떤 존재인가? 다른 사람이 내 삶을 살아준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저도 막연하게 이런 상상을 해본 적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문체를 좋아합니다. 군더더기가 없다고 할까요. 건조한 듯 하면서도 묘사가 세밀합니다.  그리고, 전작 <마티네의 끝에서>에서도 느낀 거지만, 중년 남자의 심리를 정말 잘 표현합니다. 막연한 공허감이랄까요.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부부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추천드려요.  Buona Giornata!

독서평: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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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 기발한 스토리텔링을 좋아하신다면 이 책을 읽으세요.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보입니다. 미스테리 소설같은 분위기도 나고요.  장강명 선생님은 라쇼몽식 서사라고 하셨는데 동의합니다.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은 독자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진실이 마음에 들 것입니다.  저는 약간의 부끄러움도 느꼈습니다. 저의 편견으로 인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가능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금융업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 조금 있지만 책을 즐기는데 방해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