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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 안나와디의 아이들 (캐서린 부, 반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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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무허가 빈민촌인 안나와디 마을이 삶을 다루는 르포르타주이다. 안나와디의 생활상을 자세히 묘사하기 때문에, 마치 그들의 삶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실화라는 점을 상기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삶이 실제로 있다고?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 축은 두 가족이다.  압둘네 가족. 넝마주이 고물상이 주업이다. 생활력이 있어서 안나와디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형편으로 살고 있지만, 옆집 여자와 시비 끝에 사망사고가 일어나자 그들의 삶은 풍비박산이 나버린다. 위기를 감지한 주변 사람들은 하이에나처럼 냄새를 맡고 찾아와서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그들이 축적한 손바닥만한 우위는 아주 위태로운 것이었다. 만감이 교차한다. 아샤네 가족.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아샤는 우여곡절 끝에 어떤 결실을 맺지만, 그것은 철저한 이기주의적인 방식이고, 마을의 복지 따위는 그들의 알 바가 아니다. 나름 양심적이고 엄마의 부정부패를 미워하는 순수한 대학생 딸인 만주조차, 급격한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더 이상 양심을 따르지 않는다. 애초에 모두들 양심 따위는 없는데, 혼자서만 도덕적으로 생활해봐야 결과는 빈곤 뿐이니까. 예전에 읽었던  세 갈래 길 에서도 엿볼 수 있었지만, 인도 빈곤층의 생활상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넝마주이를 해서 하루에 고작 몇 천원 벌어서 삶을 이어간다. 넝마주이 일 마저도 없으면 굶고 도둑질하는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삶이 너무 흔하다.  안나와디 마을에 만연한 부정부패도 읽는 사람을 분노하게 한다. 빈곤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기회만 되면 돈을 뜯으려는 사람들 천지이다. 특히 관공서 직원들과 경찰들이 그러한 일에 앞장서는 모습에서 참담함을 느낀다. 기부금이나 정책 지원금도 실무자 선에서 착복되는 일이 너무 흔하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부...

독서평: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수전 올리언,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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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제목을 다시 보면 좀 지나치게 거창하다. 원제는 그냥 <도서관의 책 The Library Book>이라서 좀 밋밋했는지 이런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음미해보면 원제가 더 좋다. 이 책은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책이다.  당신은 도서관을 얼마나 이용하는가? 당신의 삶에서 도서관이란 어떤 존재인가? 도서관에 잘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큰 감흥이 없을 것이다. 도서관을 사랑한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를 다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도서관은 커뮤니티이자 사회안전망이기도 하다.  이 책은 LA중앙도서관 화재사건을 취재하는 르포르타주이기도 하면서, 그 도서관의 역사를 다루고, 도서관의 현재를 관찰한다. 그러니까 3개의 서사를 교차하면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인 셈이다.  각 챕터는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3개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므로 처음에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가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저자의 취재 여행을 함께하는 느낌이다. LA중앙도서관 화재사건 이 부분은 두가지 성격이 있다.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와, 도서관의 화재로 크나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 화재가 있던 날 수상한 행적을 보이는 사람, 그를 기소한 수사관들을 인터뷰하고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것은 탐정의 정석 같은 행보이다. 사랑해마지 않는 도서관이 불타고, 소화수로 젖어서 망가진 책들도 산더미. 도서관 화재에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 젖어버린 책을 되살리려는 노력에 시민들이 동참하는 이야기가 인상깊다. LA중앙도서관의 역사 LA중앙도서관은 LA라는 도시의 성장과 함께 자라났다.  역대 도서관장의 인물 군상 이야기들. 화재가 발생한 그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내력들은 미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여성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던 시절, 흑인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던 시절 ...

독서평: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 (리처드 로이드 패리, 알마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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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로 수만명이 사망한 가운데, 도호쿠의 오카와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대부분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은 같은 재난을 겪은 다른 지역에서는 어린이 사망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오카와 초등학교의 비극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부 아이들이 산으로 가야한다고 말했지만, 교사들이 그들을 통제하고 오히려 위험이 커지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인도한 것이 드러나고...  저자의 취재 여정을 따라가며 진실이 한 겹씩 드러날 때마다, 아이들을 잃어버린 가족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은 읽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인터뷰는 건조하면서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수많은 가족의 아픔들은 모두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또 가슴이 아팠던 것은, 입장의 차이로 인해 유족들 또한 서로 반목하게 되어버리는 모습들입니다. 유해를 찾아 끈질기게 노력하는 엄마는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는 엄마를 미워합니다. 소송을 준비하는 엄마는 일본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자신들을 돕지는 못할 망정 미워하는 유족들이 서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슬픈 일이 자꾸 생기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재난 가정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서양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같은 일본인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내보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일본 특유의 수동적 태도, 무기력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일본 특유의 체면 문화와 공감능력 부족은 유족들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한국 사회가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생각나게 만드는 대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사고 이후에 정부와 당국이 모두 책임을 회피하는 장면도 기시감을 느끼게 합니다.   팩트 위주의 ...

독서평: 플라워문 (데이비드 그랜, 프시케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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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황무지에 살던 인디언들은 석유가 발견되면서 엄청난 부를 갖게 되고, 그들은 사악한 음모에 휘말리게 됩니다. 진실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모두 잔인하게 살해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주 정부는 무력하기만 하죠. 연방정부가 독립적인 수사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는데... 소설이 아니고 르포르타주인데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특히 문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담담하게 건조한 문장을 나열하는데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다음이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글실력이구나 싶습니다.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책이 이렇게 재밌으니 당연한 전개라고 생각합니만, 영화에서는 디카프리오가 맡은 인물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이네요. 저는 그 인물이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일 수는 있어도, 그를 서사의 중심으로 놓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막바지에 사건이 다 해결되었구나 싶더니, 저자는 더 거대한 어둠을 슬쩍 보여주고 책을 마칩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