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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 퍼스트 레이디 (커티스 시튼펠트,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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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통속적인 면이 있는 책이어서, 이 책이 재밌었다는 사실이 약간 분하다. 그러나 재미있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갈팡질팡하고, 자신을 의심하고, 남편을 혐오하다가도 사랑하는 그 마음들.  남자로서 여자의 내면을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성장과정의 실수와 방황들이 가감없이 묘사되는 것이 좋았다. 성적인 묘사도 아주 자세하게 나오는데 그것들이 야하게 느껴진다면, 읽는 사람 자신의 문제이다. 표지의 저 대사가 폐부를 찌른다. 주인공의 할머니가 조언해준 말이다. "잊지마, 남자들은 아주 불안정한 존재라는 걸." 남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대사의 맥락을 좀 더 설명하자면, 방황하는 남편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아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할머니가 조언해주는 것이다.  남편은 네가 그를 붙잡아주기를 바라고 있단다. 나는 이 작품에서 할머니가 가장 좋았다. 그녀의 지혜와 통찰력에 감탄한다. 명대사도 많은데, 그 중 한 장면을 꼽아보고 싶다.  "내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모든 사람이 다 동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는 내 삶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 순간 나는 할머니가 미웠다. ... 나는 돌아서서 할머니를 쏘아보았다. "사람들은 원래가 복잡한 거란다. 복잡하지 않은 사람들은 따분한 사람들뿐이야." "그럼 저도 따분하겠네요."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주인공이 퍼스트 레이디라는 점은 사실 작품의 핵심은 아니다. 실제 영부인 생활은 후반부에 아주 조금만 나오니까.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셀링 포인트로 잡은 것 같다. 원제는 "American Wife"이다. 실존 인물이 모델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재벌집...

독서평: 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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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화 한 편 감상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 미스테리, 느와르, 로맨스, 성장소설 다 됩니다.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과거를 무대로 여성이 겪는 차별을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남자들만 할 수 있다는 다이빙에 이끌려 도전하지만 자꾸만 가로막힙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은 결국 실력으로 인정받고 이겨내지요. 이것만 보면 좀 뻔해보일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주인공을 둘러싼 다른 두 남자, 아버지와 갱스터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실종은 주인공의 삶에 큰 그늘을 드리우고, 실종 전 아버지와 만난 적이 있는 갱스터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미스테리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주인공. 뭔가 있다는 감이 팍팍 오는거죠.  그런데 여기서 그들은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제가 유교보이라 그런건지, 아버지의 원수이자 20살 정도 차이나는 갱스터 남자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네요. 저자도 딱히 설득력을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위험한 비밀을 가진 이성이라 더 매력적으로 보인걸까요? 죽은 것 같던 아버지는 알고보니…(스포일러 방지) 아버지의 원수인 갱스터는 알고보니 그냥 악인이 아니라 작가님이 내세운 제2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또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불안한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뒤로 갈수록 무리수가 등장합니다. 갱스터가 갑자기 사랑 하나만 붙들고 연습도 없이 잠수를 시도하는데… 읽으면서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약간 뜬금없기도 하고요. 제대로 교육도 안받고 잠수를 하니, 잠수병이 올만도 한데...(스포일러 방지) 어쨌든 재미 하나는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