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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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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아픔이 있고 그것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들이다. 호텔에 모여들어 치유의 시간을 갖고 새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 좋았지만 끝내 치유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괜찮았다. 이런 호텔이 있다면 나부터 가고 싶다. 호텔 주인 치키의 이야기. 남자에게 꼬여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그 순진함과 멍청함에 기가 막혔다. 바보야, 안돼,라고 외치면서 읽었다. 그치만, 젊으니까 할 수 있는 실수들.  뉴욕에서 실연의 충격을 거짓으로 포장하고 하숙집 잡일을 하는 삶에서 답답했지만, 또 좋게 풀려 나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네.  인생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답답할 수 있지만, 신은 그것을 내버려두신다는 생각이 든다. 리거 이야기. 리거는 어린 시절에 범죄에 가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엄마는 충격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스토니브리지에서 건실한 청년이 된 리거는 엄마에게 계속 손을 내밀지만, 엄마는 계속 생기가 없는 모습이고…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리거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은 엄마가 회복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나는 그 엄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이던 귀한 자식이 인간 말종이 되었다는 충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엄마의 냉담한 모습을 보고) 그렇다고 풀이 죽어선 안되었다. 그에게는 평생 최고의 날이었으니까. 그런 날을 망칠 수는 없었다. (92) 올라 이야기. 도회지에서 일하던 매력적인 여성인 올라. 그녀는 선을 넘는 희롱에 분노하고 스토니브리지로 돌아온다.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생기니까. 그걸 깨달았다면 너도 반쯤 온거야. (115)  올라의 롤모델 선생님의 말. 예비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 남자가 속터진다. 눈치 없는 남자는 여자를 괴롭게 하는 법이다. 서양에서도 이런 남자는 많구나. 영화배우는 공허함에 시달리고 모든 일이 꼬이는데, 여기 와서 치유받는다.  이 챕터에서는 외로운 남자의 마음을 잘 묘사해준다. 의사부부의 이야기...

독서평 :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 (데이비드 미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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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습니다. 와, 정말 너무 재밌어요.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면서 재밌다고 느끼는 중입니다. 이 책을 펼치면 당신은 그 세계로 빨려들어갑니다. 당신은 에도 막부시대 말기, 나가사키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접촉이 허락된 데지마 섬에서 무역상인으로 일하는 "야코프 더주트"라는 네덜란드 사람이 됩니다. 1인칭 시점은 아니지만, 주로 야코프의 시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로만 서술을 제한하기에 이런 몰입감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그런 소설은 흔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가 일본인들보다 야코프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야코프의 사고방식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서구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들은 미스테리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일본 측 사람들은 의뭉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모두 친구이냐? 그것도 알 수 없죠.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를 모르는 애매함이 긴장을 최고조로 높여줍니다. 주인공은 정직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조직에 대한 양심을 지키며 정도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동료 직원들과 일본 측 통역관들은 주인공을 싫어하기도 하고 협박도 합니다. 이로 인해 느껴지는 긴장감이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러나 작가가 설계한 음모는 너무 음침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갑자기 작품이 무협지 수준으로 떨어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긴장감과 호기심은 오히려 커집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속도가 빠르고, 작가가 벌려놓은 문제들은 급하게 해결되는데 약간 당황스럽지만 또 나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해결이 최선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야코프와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화는 모든 것을 매듭짓는 장면입니다. 좋은 마무리입니다.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더더욱 재미있을 것입니다....

독서평: 돈 (에밀 졸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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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자본주의, 특히 유가증권시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 실감난다. 에밀 졸라가 주식에 대해 가진 시각이 뚜렷이 드러난다. 소설의 무대는 좀 더 후대의 일이지만, 존 로가 프랑스 미시시피 회사로 시장을 풍미하던 시절, 광기의 시절은 어떤 모습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사카르는 애초에 건전한 사업가가 아니다. 한탕 크게 해서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만국은행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끌어들여 실체도 없는 사업을 벌이겠다는 계획은 헛웃음이 날 정도로 공허하다. 그런데 이런게 또 실현되는 것이 이 세상이다.  오늘날에도 스타트업이니, VC니 해서 같은 동력으로 움직이는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주식이 영원히 상승하면서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은 어딘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사카르 혼자만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도 설마 설마 하다가 제발로 광기에 뛰어든다. 주식이 상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어떤 우화를 보는 듯하다. 결말은 정해진 수순이다. 본질과 무관하게 상승한 주식을 기다리는 것은 파멸적 하락이다. 위태위태하던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진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만연체의 문장이 읽는 것을 어렵게 한다. 등장인물이 많고 그들에 대한 묘사 또한 만연체로 진행되므로, 작품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독서평: 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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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화 한 편 감상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 미스테리, 느와르, 로맨스, 성장소설 다 됩니다.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과거를 무대로 여성이 겪는 차별을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남자들만 할 수 있다는 다이빙에 이끌려 도전하지만 자꾸만 가로막힙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은 결국 실력으로 인정받고 이겨내지요. 이것만 보면 좀 뻔해보일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주인공을 둘러싼 다른 두 남자, 아버지와 갱스터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실종은 주인공의 삶에 큰 그늘을 드리우고, 실종 전 아버지와 만난 적이 있는 갱스터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미스테리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주인공. 뭔가 있다는 감이 팍팍 오는거죠.  그런데 여기서 그들은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제가 유교보이라 그런건지, 아버지의 원수이자 20살 정도 차이나는 갱스터 남자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네요. 저자도 딱히 설득력을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위험한 비밀을 가진 이성이라 더 매력적으로 보인걸까요? 죽은 것 같던 아버지는 알고보니…(스포일러 방지) 아버지의 원수인 갱스터는 알고보니 그냥 악인이 아니라 작가님이 내세운 제2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또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불안한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뒤로 갈수록 무리수가 등장합니다. 갱스터가 갑자기 사랑 하나만 붙들고 연습도 없이 잠수를 시도하는데… 읽으면서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약간 뜬금없기도 하고요. 제대로 교육도 안받고 잠수를 하니, 잠수병이 올만도 한데...(스포일러 방지) 어쨌든 재미 하나는 확실합니다. 

독서평: 바닷가에서 (압둘라자크 구르나,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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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사람의 난민이 있습니다. 난민의 처지를 아시나요? -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해서, 고생끝에 겨우겨우 받아들여졌어요. 그런데 영국정부에서 이미 망명해 있던 동향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고 연결을 해줬는데 글쎄.. 철천지 원수의 아들이지 뭐에요. 이 둘은 어떻게 될까요? -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서술이 인상적. 화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분입니다. 특히 중간 중간에 <신이여, 그들을 축복하소서>처럼 기도를 뇌까리는 것까지 완벽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한동안 저도 혼잣말로 기도문을 읊었습니다. - 저자 본인의 경험이 들어있는 난민 문제에 대한 고민도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유럽의 난민 정책은 과연 옳은가, 식민지 착취의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은 어디까지 정당한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 인생의 모든 우연들이 겹치고 겹치는데, 결국은 악연이 우정으로 바뀌는 서사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인생에 대한 찬미입니다.  -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드리면서, 인용구를 하나 남겨드립니다. Buona Giornata!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전하고 싶어 안달할 만큼 위대한 진실을 깨달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처한 상황과 시대에 빛을 드리울 만큼 모범적인 삶을 살지도 않았다는 거다. 나는 살아왔지만, 살아버린 것이기도 하다." (13 페이지)

독서평: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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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 기발한 스토리텔링을 좋아하신다면 이 책을 읽으세요.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보입니다. 미스테리 소설같은 분위기도 나고요.  장강명 선생님은 라쇼몽식 서사라고 하셨는데 동의합니다.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은 독자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진실이 마음에 들 것입니다.  저는 약간의 부끄러움도 느꼈습니다. 저의 편견으로 인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가능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금융업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 조금 있지만 책을 즐기는데 방해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