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평 : 헤븐 (가와카미 미에코, 책세상)

주인공이 학교폭력 피해자인 소설은 개인적으로 처음 읽었는데 그 묘사가 생생해서 독자까지 괴로울 정도이고, 읽는 내내 몰입하게 되었다.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덤덤하게 서술하기 때문에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작품을 성장소설로 읽었다. 주변 인물들과의 소통 속에서 주인공은 분명 성장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 

주인공이 교류하는 고지마와 모모세, 두 사람을 통해 들려주는 대립하는 두 생각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고지마의 생각과 모모세의 생각 중 어느 쪽에 더 이끌리는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 가장 중요한 인물은 같은 반의 또다른 학폭 피해자인 고지마이다. 
    • 주인공이 남자 피해자라면, 그녀는 여자 피해자이다. 주인공과 교류하면서 그녀는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그녀와의 서신 교환, 그녀와의 데이트(?)는 주인공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다. 
    • 그녀는 주인공의 약점을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한다. 주인공은 얼마나 설레었을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 그런데 사실 그녀의 태도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학폭의 아픔을 공유하는 우리가 너무 소중한 존재이니 견뎌야 한다는 것인데...혹시 정신승리를 하는 중인 것이 아닐까. 고지마의 대사를 보자.
  • 모든 것에 의미가 있을 거야. 우리가 당하는 괴롭힘도. 우리를 괴롭히는 저 애들도 불쌍해. 저들은 자기들이 남에게 어떤 아픔을 주는지 몰라. 언젠가 깨닫겠지. 이런 마음이 너무 갸륵하고 슬픈걸.
  • 네 눈이 징그럽다느니 뭐라느니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너무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 없는 거야. 생긴게 무섭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라, 자기네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점이 무서운 거지. 걔네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그저 가짜들의 집합이니까 자기네랑 다른 종류의 뭔가가 있으면 그게 무서워서, 그래서 때려눕히려고 하는 거거든.
  • 걔네들은 깨닫지 못했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근데 너랑 난 이 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 약함으로 이 상태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강함이야.
    • 사실 고지마의 통찰에는 일리가 있다. 특히 학교폭력을 하는 아이들은 사실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은 매우 정확한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과 다르고 고통을 감내하는 내가 특별하다는 지점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 결국 주인공이 약점을 치료하겠다고 하자 그녀는 돌변한다. 
      • 진정 주인공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 주인공이 자신과 같이 고통속에 머무르기를 바랬을 뿐이다.

  • 다음으로 인상적인 인물은 학폭 주동자인 니노미야가 아니라, 한발짝 물러서 있는 모모세라는 소년이다. 
    • 그는 니노미야만큼 부잣집 아들이고, 학교에서 주목받는 미소년 우등생이면서 잘나가는 그룹의 일원이자 학폭 주동자의 일원이다. 
      • 학폭에 적극 가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폭 현장에는 항상 있기 때문에 가해자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그런데 학교 밖에서 주인공과 마주쳤을 때 주인공이 대화를 신청하자 뜻밖에도 선선히 대화를 받아준다. 
      • 냉정한 태도지만 성실하게 주인공에게 답변하는 것이 신선했다. 그와의 대화를 보자.
  • "우연이라고?" 나는 모모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되물었다. "그래, 우연. 난 너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니노미야랑 애들이 너한테 하는 짓도 개인적으로는 전혀 흥미가 없어. 내 입장을 말하자면 그래."
  • "내 생각에 납득할 필요는 전혀 없어. 마음에 안 들면 스스로 어떻게든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나는..." "이것봐, 이 세상은 말이지, 뭐랄까, 하나가 아니야. 모두가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편리한 하나의 세상은 아무데도 없다고."
    • 주인공이 당하는 학폭에 의미 따위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뭐든 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당하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불쌍한 피해자로 머물러 있는 것이 올바르냐고 묻는다. 넌 왜 그 상태로 머물러 있어?라는 물음이다. 
      • 고지마의 논지와 정확히 반대 편이다.
    • 개인적으로는 냉혹해보여도 모모세의 생각에 좀 더 기울어진다. 
      • 모모세의 논지는 고지마의 기괴함을 돋보이게 해준다.
        • 고지마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지키기 위해 고통 속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 벗어나려는 주인공을 질타하더니, 끝내는 절연한다.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다. 
        • 주인공을 향한 마음도 진실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 같이 괴로운 삶을 살아갈 동료였을 뿐이지, 그가 행복의 길로 가겠다는 것을 알자 응원은 커녕 마음을 닫아버리는 모습이 그 증거이다. 

  • 파국은 결국 찾아오는데, 그 전개는 예상을 뛰어넘기도 하고 정말 최악이기도 하다. 아 정말 갈데까지 가는구나 싶을 정도이다. 
    • 그렇지만 결국 그 결말은 후련하다. 주인공은 모모세의 조언을 따라, 돌맹이를 집어들고 휘두른다. 
      • 고지마가 말했던 대로 학폭 주동자들은 겁쟁이들일 뿐이었다. 
    • 주인공은 학폭에서 벗어나고, 괴롭힘의 빌미가 되었던 신체적 약점도 고쳐나간다. 고지마와는 더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않는다. 만족스러운 결말이다. 



PS. 주인공의 엄마는 사실 친엄마가 아닌데, 무심한 듯 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라서 좋았다. 주인공의 친아버지인 남편과 이혼을 생각하면서도, 주인공에 대한 태도는 한결같다. 무심해 보였던 점들도 사실은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학폭 사실이 드러나자 주인공을 적극 지지해준 모습들로부터 그것을 알 수 있다. 

PS2. 제목 <헤븐>은 고지마가 주인공에게 보여주는 내면 이야기이자, 어떤 그림의 제목이지만 그것을 주인공이 실제로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마무리한 작가의 솜씨에 감탄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버드와칭: 코펜하겐의 오리 가족

만화읽기: Peanuts #12

문장읽기: 어린이 동화 읽기 -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 (3부, 완결)

독서평 : 친밀함 (매튜 켈리, 해피니언 출판사)

문장읽기: 어린이 동화 읽기 -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 (1부)

독서평: 오리진 (루이스 다트넬, 흐름출판)

문장읽기: 엘레나 페란테의 책읽기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