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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리처드 번스타인, 책과함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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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차대전 무렵,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돌아보는 책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시절 미국은 정말 세계 최고의 국력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미숙함을 보여줍니다. 미국이 좀 더 지혜롭게 행동했더라면, 동아시아의 미래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요? 미국은 국제관계를 도덕적인 판단기준, 정의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갖는데, 미국의 수많은 외교 실패가 여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역사에 돋보기를 들이대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제가 재미있었다고 느끼는 관전 포인트를 몇 가지 공유드립니다.   1. 국공내전 시절의 중국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1930년대 초에 중국 농촌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던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헨리 토니Richard Henry Tawney는 전형적인 중국 농민을, 목까지 차는 물속에 서 있어 "잔물결이 한 번만 일어도 곧바로 익사할 수 있”는 사람에 비유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기에는 잔물결이 자주 일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고향에서 이렇게 먼 곳에 와서 살고 있습니까?" 토니가 한 농민을 면담하면서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비적들, 병사들, 그리고 기근 때문이죠." 2. 공산당은 정말 사악한 집단이다. 공산당의 거짓말과 생떼는 정말 징그럽다.  공산당의 기만은 정말 치가 떨린다. 상대방 말에 다 수긍해주면서 뒤로 딴짓하기. 스탈린이고 마오쩌둥이고 김일성이고 다 똑같다.   가장 온화해 보이는 공산주의자조차 냉혈한이다. 저우언라이는 암살대를 운영한 잔혹한 면도 있었다. 그해 연말께 마셜이 트루먼에게 자신은 더 이상 중재 노력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을 때, 가장 큰 이유로 "거짓말과 격렬한 공격으로 점철된 공산당의 악랄한 선전을 지적했다.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에 대한 비하인드가 충격적이다.  그 자신은 진실했을지언정 사실은...

독서평: 농경의 배신 (제임스 C. 스콧,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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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이 책은 인류가 최초로 도시와 국가를 형성하게된 과정을 가장 현실적으로 설명해준다. 물론 저자는 추론임을 강조하지만, 그 추론은 여러가지 학술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무심코 생각하는 통념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 내가 읽고 정리한 내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인류는 수렵채집 단계에서 농경 단계로 넘어갔다? 인류가 다같이 수렵채집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농경을 시작하고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도식적 이론은 틀렸다.  어느날 뿅 하고 농경을 시작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인류는 자연을 세심히 관찰하고 주변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일부 변형하기도 하면서 삶을 영위했다. 인간은 환경을 바꾸고 환경은 인간을 바꾸었다. 농경은 주변 환경을 변형하면서 이용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렵, 채집, 목축, 농경을 모두 다 수행했다.  수렵채집과 농경을 동시에 영위한 기간은 아주 길었고, 그러한 삶은 좋은 삶이었다. 최대한 많은 식량원을 갖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했다는 가정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농경의 비중이 높아진 것일까? 저자는 기후변화를 그 원인으로 설명한다.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다양한 식량확보 수단 중 많은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건조해지고 수위가 낮아지니까 물있는 곳으로 모여들 수밖에. 생태 자원이 줄어드니까 농사의 중요성이 강제로 커질 수밖에. 2. 농경으로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면서 국가가 출현했다? 농경과 정착생활이 시작된 후에도 거의 4,000년동안이나 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농경이 국가 출현의 원인이라는 가정은 틀렸다. 저자는 역사를 '길들이기' 과정으로 정의한다.  환경, 생물, 인간을 모두 활용하고자 하는 욕망. 처음에는 불, 이어 식물과 가축, 그리고 국가의 국민과 포로, 마지막으로 가부장제 가정 안에서의 여성 등 길들이는 과정...

독서평 :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 (데이비드 미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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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습니다. 와, 정말 너무 재밌어요.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면서 재밌다고 느끼는 중입니다. 이 책을 펼치면 당신은 그 세계로 빨려들어갑니다. 당신은 에도 막부시대 말기, 나가사키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접촉이 허락된 데지마 섬에서 무역상인으로 일하는 "야코프 더주트"라는 네덜란드 사람이 됩니다. 1인칭 시점은 아니지만, 주로 야코프의 시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로만 서술을 제한하기에 이런 몰입감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그런 소설은 흔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가 일본인들보다 야코프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야코프의 사고방식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서구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들은 미스테리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일본 측 사람들은 의뭉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모두 친구이냐? 그것도 알 수 없죠.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를 모르는 애매함이 긴장을 최고조로 높여줍니다. 주인공은 정직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조직에 대한 양심을 지키며 정도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동료 직원들과 일본 측 통역관들은 주인공을 싫어하기도 하고 협박도 합니다. 이로 인해 느껴지는 긴장감이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러나 작가가 설계한 음모는 너무 음침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갑자기 작품이 무협지 수준으로 떨어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긴장감과 호기심은 오히려 커집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속도가 빠르고, 작가가 벌려놓은 문제들은 급하게 해결되는데 약간 당황스럽지만 또 나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해결이 최선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야코프와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화는 모든 것을 매듭짓는 장면입니다. 좋은 마무리입니다.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더더욱 재미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