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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탈출하는 글쓰기

2026. 5. 15.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를 읽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등장하기 때문에 반가웠다. 이 작품에서는 허클베리와 같이 모험을 떠나는 흑인 노예 짐이 주인공이다.  헉과 짐의 여정은 흥미롭다. 미국 곳곳의 사람들과 풍경들이 생경하면서도 재미있고, 빠른 전개에 지루할 틈이 없다. 어느 사기꾼 듀오와 만나는 장면은 블랙 코미디여서 출근길에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고 말았다.  짐은 자신이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노예로 살아야 하는 미국은 그에게 지옥이다. 짐의 시선을 통해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모든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노예제도는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이다. 영화 <노예 12년>이 생각나기도 했다.  짐은 긴 여정을 거치는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글을 써야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험난한 모험 중에도 작은 연필을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노예는 연필을 소유할 수 없었기에 그 연필은 누군가의 목숨 값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그는 자유를 쟁취할 힘을 얻는다. 짐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고 더 좋은 펜을 소유한 나로서는, 글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시시피 강변 어딘가에서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말려가면서 몽당 연필로 글을 쓰는 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펜을 잡는다.

독서평: 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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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에서 작은 가구매장을 운영하는 레이 카니는 험한 동네에서 험하게 자라났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의 범죄자들과 자꾸 엮이게 되면서 그도 조금씩 말려들게 되는데… 레이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흑인 중에서도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고, 그 때문에 장인과 장모는 레이를 은근히, 대놓고 무시합니다. 레이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복수도 하게 되는데… 재미있냐고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에 따라 다릅니다. 이 작품은 줄거리가 재밌다기보다는 분위기를 즐기는 작품입니다. 당신은 작가의 안내를 따라 뉴욕 할렘의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주인공이 느끼는 긴장을 같이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는 빛과 어둠의 영역 양쪽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죠. 이 긴장감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캐릭터 쇼이기도 합니다. 각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입니다. 사고뭉치이고 주인공을 범죄의 세계로 말려들게 만드는 사촌 프레디. 레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깡패 페퍼. 레이에게 돈을 뜯으러 찾아오는 부패 경찰. 레이에게 보호세를 받아가는 폭력조직. 레이에게 보석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노련한 장물아비. 레이의 이중 생활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직원들. 가난한 흑인을 경멸하는 부유층 흑인들. (레이의 장인 장모도 포함)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플롯이 치밀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레이가 과연 살아남을수 있을지 걱정하며 읽었습니다. 종장에는 드디어 레이에게 파국이 찾아오는가 싶어지는데... 당신이 결말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집니다.

독서평: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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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주인공 엘우드의 사연이 너무 기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전개되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저자가 펼쳐보이는 스토리를 따라간다. 인권유린이란 것을 말로만 듣고 관념적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 더더욱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개인의 삶에 가해지는 폭력은 너무 큰 불행이다. 재발을 막는다고는 쳐도, 이미 일어난 고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전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면 작품을 읽고 느끼는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소설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독자를 속였고, 그 진실은 어떤 대체현실을 생각하게 만들면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인권에 대한 어떤 담론보다, 이 이야기 하나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