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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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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문학이라는 장르. 모든 챕터가 요리 레시피로 시작한다. 요리 재료를 나열한 페이지가 나오고, 본문에서는 요리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챕터를 연다. 양파를 다지고, 고기를 볶고, 향긋한 냄새가 주방에 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멕시코 요리에 대해 자세히 몰라서 조금 아쉬웠다. 만약 멕시코 요리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 챕터를 규정하는 느낌을 강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약간 판타지 성향이 다분한 소설이기도 하다. 묘사에 과장이 심한데,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티타의 눈물이 강같이 흘러 계단으로 쏟아져 내려가면서 콸콸 쏟아진다던가. 집안의 독재자 엄마 때문에 결혼도 못하는 일이 있다고? 심지어 청혼하러 온 남자에게 다른 자매랑 결혼하라고 부추긴다고? 그리고 그 남자는 그걸 받아들인다고?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지만, 그래야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으니까. 마더 엘레나는 어쩌면 그렇게 냉혈인간인지. 나중에 그녀의 인간적 약점도 드러나지만, 자신의 친딸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주인공 티타는 실연의 상처로 점차 무너져가지만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주방 생활과 맛있는 음식들이다. 이 책의 주제는 에로틱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여성 작가가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내는 에로티시즘이 인상적이다.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도 무협지처럼 과장된 묘사가 나오는 것이 웃기다.

독서평 : 광인 (이혁진,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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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사랑의 이해>는 읽지 않았지만 드라마를 아주 좋게 봤었다. 주인공 해원은 40대 초반의 싱글 남성. 그가 주식투자, 대출없는 아파트, 채굴같은 단어를 말하는 것이 내 또래라는 인식을 주어서 친근했고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결혼 못한 스트레스로 엄마와 연락을 안한다는 설정. 이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지. 작가님 또한 딱 이 또래의 사람이었다. 위스키를 잘 모르지만 작중에 묘사되는 위스키의 맛에 대한 표현이 정말 좋다. 나도 위스키를 마셔보고 싶을 정도였다.  <경고> 스포일러 주의. 책을 읽고 난 후에 읽는 것을 권장함. 이 책에서 주인공 2인, 준연과 하진이 철학 이야기를 많이 해서 읽기가 조금 괴로웠다.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십중팔구는 없을 것이고, 그런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그와의 대화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는 정말로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느낀다.  아마도 작가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평소 생각한 것을 말하고 있나 싶었다. 준연과 하진이 이런 철학을 깊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인물 설정이기도 했다. 그들의 실제 삶도 그런 모습이기에 망정이지, 그냥 듣기에는 개똥철학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내용들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 해원이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풀어놨기 때문에, 중간에는 조금 읽기가 버거웠다.  특히 불을 지르기 직전에는 개새끼라는 둥 원색적인 욕설을 동원하여 증오심을 표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결국 준연과 하진을 두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혼자만의 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급격히 반전하는 심정을 묘사하는 것도 인상깊었다. 해원의 그릇이 크지는 않지만, 해원을 미쳐가게 만든 준연과 하진 두 남녀도 잘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도덕적 기준이 너무 높다. 두 남녀가 외딴 산속에서 몇날며칠을 밤낮으로 일하는 데 ...

독서평: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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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농사를 짓고, 결혼하고, 싸우고 사랑하는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물론 문화적 특이점은 있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은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주인공 오콩코는 자수성가하여 부를 축적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삶이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저런 사건사고들의 그의 삶을 괴롭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목처럼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은 언제 일어날까? 궁금해하면서 읽었는데 과연 후반부에 그 일이 일어나고 서구권 출신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등장하는 아프리카 부족의 풍습이라던가,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래동화와 같은 문화적 특색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그들의 토속 신앙은 처음 보는 것이지만, 어딘지 낯설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