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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 여름 (이디스 워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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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800년대 뉴잉글랜드의 어느 여름날을 무대로 한다.  제목이 왜 여름이겠나. 읽어보면 안다. 그냥 독자도 여름 속에 빠져든다. 날씨와 자연에 대한 묘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여름이 싫지 않다.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전원 생활을 지루해하는 순진한 젊은 여성의 심리를 읽는 것이 재미있다.  주인공 채리티는, 어느 변호사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동네에서 백안시하는 어느 동네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의 비밀을 내심 부끄러워 하면서, 이런 시골 마을에서 지루한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를 싫어한다. 이런 채리티의 삶이 갑자기 흥미로워지는 것은 역시 잘생긴 청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이라서, 이게 진짜 여자의 마음이구나 싶은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남자인 나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마냥 흥미로운 느낌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을 읽었는데, 남자가 상상해서 묘사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상당히 기괴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본 작품을 읽을 때 뭔가 더 상쾌한 기분이었다. 주인공 채리티는 말하자면 입양된 입장이다. 시골 마을의 유지인 초로의 변호사는 아내와 함게 채리티를 데려와서 딸처럼 키우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채리티에게 결혼해 달라고 한다.  너무 충격적이고, 독자인 나도 극혐하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채리티도 몸서리를 치면서 거부하고, 그와의 관계는 험악해진다. 순진하지만 자존심은 센 주인공 채리티는 사랑에 빠지면서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남자는 잘생기고 사랑둥이지만 알고보니 임자가 있는 병신이었다. 왜 병신이라고 하냐면, 사실이 들통났을때 그의 행보가 병신같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채리티를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아이를 갖게 된 채리티는 남자가 자신에게 온다고 믿고 싶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럴리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한다. 멘탈이 탈탈 털린 채리티는, 도저히 삶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독서평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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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문학이라는 장르. 모든 챕터가 요리 레시피로 시작한다. 요리 재료를 나열한 페이지가 나오고, 본문에서는 요리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챕터를 연다. 양파를 다지고, 고기를 볶고, 향긋한 냄새가 주방에 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멕시코 요리에 대해 자세히 몰라서 조금 아쉬웠다. 만약 멕시코 요리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 챕터를 규정하는 느낌을 강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약간 판타지 성향이 다분한 소설이기도 하다. 묘사에 과장이 심한데,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티타의 눈물이 강같이 흘러 계단으로 쏟아져 내려가면서 콸콸 쏟아진다던가. 집안의 독재자 엄마 때문에 결혼도 못하는 일이 있다고? 심지어 청혼하러 온 남자에게 다른 자매랑 결혼하라고 부추긴다고? 그리고 그 남자는 그걸 받아들인다고?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지만, 그래야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으니까. 마더 엘레나는 어쩌면 그렇게 냉혈인간인지. 나중에 그녀의 인간적 약점도 드러나지만, 자신의 친딸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주인공 티타는 실연의 상처로 점차 무너져가지만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주방 생활과 맛있는 음식들이다. 이 책의 주제는 에로틱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여성 작가가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내는 에로티시즘이 인상적이다.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도 무협지처럼 과장된 묘사가 나오는 것이 웃기다.

독서평: 세 여자 (리사 태디오, 코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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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일단 매우 흥미로움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세 여자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치부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밀한 사건과 감정들. 책 홍보문구에서는 여자의 성욕을 다룬다고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인 나로서는 흥미진진했지만,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여자의 성욕을 이해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세 여자의 성욕이 어떤 전형적인 사례라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 다만, 이 책의 이야기들은 어떤 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고, 독자의 마음에는 의문과 여러 감정들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어떤 것을 느끼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정리해보면,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여성들이 자신을 파괴하는 양상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감상을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매기. 그녀는 성숙한 어른과의 꿈같은 사랑을 시작하지만 그 사랑은 파국으로 끝난다.  그녀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놀랍고 신비한 세계를 탐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은 그저  일탈의 기회를 잡고 실행한 것 뿐이고, 일이 꼬이는 순간 즉시 배신한다. 그들이 문자로 대화를 그토록 길게 이어간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가 그에게 편지를 쓴 순간 이미 무언가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물론 그 어른은 개새끼이지만, 케미가 불타오르는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타오르게 내버려둔 것이 문제이다. 슬론.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기는 한 건가? 그녀에게는 섹스 뿐인 것 같다. 그녀는 섹스와 사랑을 헷갈려하는데, 그것은 마음에 구멍이 나있기 때문일까? 남편의 변태적 성향으로 그녀는 스스로도 긴가민가 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녀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은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