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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농경의 배신 (제임스 C. 스콧,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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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이 책은 인류가 최초로 도시와 국가를 형성하게된 과정을 가장 현실적으로 설명해준다. 물론 저자는 추론임을 강조하지만, 그 추론은 여러가지 학술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무심코 생각하는 통념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 내가 읽고 정리한 내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인류는 수렵채집 단계에서 농경 단계로 넘어갔다? 인류가 다같이 수렵채집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농경을 시작하고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도식적 이론은 틀렸다.  어느날 뿅 하고 농경을 시작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인류는 자연을 세심히 관찰하고 주변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일부 변형하기도 하면서 삶을 영위했다. 인간은 환경을 바꾸고 환경은 인간을 바꾸었다. 농경은 주변 환경을 변형하면서 이용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렵, 채집, 목축, 농경을 모두 다 수행했다.  수렵채집과 농경을 동시에 영위한 기간은 아주 길었고, 그러한 삶은 좋은 삶이었다. 최대한 많은 식량원을 갖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했다는 가정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농경의 비중이 높아진 것일까? 저자는 기후변화를 그 원인으로 설명한다.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다양한 식량확보 수단 중 많은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건조해지고 수위가 낮아지니까 물있는 곳으로 모여들 수밖에. 생태 자원이 줄어드니까 농사의 중요성이 강제로 커질 수밖에. 2. 농경으로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면서 국가가 출현했다? 농경과 정착생활이 시작된 후에도 거의 4,000년동안이나 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농경이 국가 출현의 원인이라는 가정은 틀렸다. 저자는 역사를 '길들이기' 과정으로 정의한다.  환경, 생물, 인간을 모두 활용하고자 하는 욕망. 처음에는 불, 이어 식물과 가축, 그리고 국가의 국민과 포로, 마지막으로 가부장제 가정 안에서의 여성 등 길들이는 과정...

독서평: 오리진 (루이스 다트넬,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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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하다. 사피엔스에 버금간다는 말이 맞다. 사피엔스가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지구 전체의 활동이 인간을 만들어냈음을 말한다. 혹독하고 빈번한 환경변화가 고도의 지능을 가진 호미닌의 출현을 이끌었다. 재밌습니다.   - 지구의 지질학적 활동이 인류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점. 알고나서 생각하면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 책에서 지적해주지 않았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관점이다. -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지각 활동, 판의 움직임이 기후도 변화시키고 생물계도 변화시켜서 인간을 사냥하고 협력하게 만들었다는 점. 우리는 판의 자식 이라는 표현은 과격하지만 강렬하다. - 높은 지능은 개체가 한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생겨나는 다양한 도전에 대처하는데 도움을 준다.  훨씬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 맞서 진화는 많은 세대가 지나는 동안 종의 신체나 생리를 적응시키는 방법(예컨대 낙타를 건조한 환경에서 잘 살아가도록 적응시킴으로써)으로 대처할 수 있다.  반면에 지능은 자연선택이 신체를 적응시키는 것보다 더 빨리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가 내놓은 해결책이다.  -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증폭기 호수들은 헐거워진 전구처럼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그리고 각각의 변동은 구할 수 있는 물과 식물과 먹이에 큰 변화를 초래했고, 이것은 우리 조상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빠르게 요동하는 환경 조건은 다재다능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호미닌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따라서 더 큰 뇌와 더 높은 지능의 진화를 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