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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 초협력사회 - 전쟁은 어떻게 협력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는가 (피터 터친, 생각의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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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인류의 진화를 설명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인류의 진화 과정의 핵심 동인으로 지리, 제도를 생각해왔는데 이 책에서는 전쟁을 주된 동인으로 설명해주고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인 류의 역사를 하나의 키워드로 엮어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리적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총, 균, 쇠』를 썼고, 대런 아제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제도'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썼다. 이 책 『초협력사회』에서 터친은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본다.  터친에 따르면, 인류가 거대한 협력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인류가 오랜 평등의 시기를 마친 후 극도의 불평등 시기를 거치고 또다시 평등한 시대를 열게 된 것도 전쟁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전쟁이 인류의 진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발사식 살상무기로 인해 알파 수컷은 사라지고 협력해야 할 이유가 강화된 것이다. 협력하지 않는 부족은 전쟁을 이길 수 없으니까.  소부족간 전쟁을 우습게 보지 마라. 패하는 부족은 동화흡수되는 형태의 절멸을 겪는다. 병력수와 전투력, 사상자로 인한 전투력의 감소를 생각하면 수적 우위의 제곱만큼 상대방에게 사상자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을 위해 소부족을 넘는 거대한 국가의 필요가 생겨난다. 그런데 거대화를 하고 싶어도 신뢰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냐? 여기서 종교 등장!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같은 신앙인이라면 믿고 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잘 알려진 몇 가지 이론들을 반박하는 대목이 좋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초협력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이 통렬하다. 마지막 챕터에서 스티븐 핑커의 <선한 천사>를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극심한 불평등은 폭력의 원천이기에, 인류가 다시 폭력의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저자에게 동의한다. 또한 인류의 진화과정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분명 뛰어나다.  인류의 발전은 항상 ...

독서평: 농경의 배신 (제임스 C. 스콧,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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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이 책은 인류가 최초로 도시와 국가를 형성하게된 과정을 가장 현실적으로 설명해준다. 물론 저자는 추론임을 강조하지만, 그 추론은 여러가지 학술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무심코 생각하는 통념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 내가 읽고 정리한 내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인류는 수렵채집 단계에서 농경 단계로 넘어갔다? 인류가 다같이 수렵채집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농경을 시작하고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도식적 이론은 틀렸다.  어느날 뿅 하고 농경을 시작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인류는 자연을 세심히 관찰하고 주변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일부 변형하기도 하면서 삶을 영위했다. 인간은 환경을 바꾸고 환경은 인간을 바꾸었다. 농경은 주변 환경을 변형하면서 이용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렵, 채집, 목축, 농경을 모두 다 수행했다.  수렵채집과 농경을 동시에 영위한 기간은 아주 길었고, 그러한 삶은 좋은 삶이었다. 최대한 많은 식량원을 갖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했다는 가정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농경의 비중이 높아진 것일까? 저자는 기후변화를 그 원인으로 설명한다.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다양한 식량확보 수단 중 많은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건조해지고 수위가 낮아지니까 물있는 곳으로 모여들 수밖에. 생태 자원이 줄어드니까 농사의 중요성이 강제로 커질 수밖에. 2. 농경으로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면서 국가가 출현했다? 농경과 정착생활이 시작된 후에도 거의 4,000년동안이나 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농경이 국가 출현의 원인이라는 가정은 틀렸다. 저자는 역사를 '길들이기' 과정으로 정의한다.  환경, 생물, 인간을 모두 활용하고자 하는 욕망. 처음에는 불, 이어 식물과 가축, 그리고 국가의 국민과 포로, 마지막으로 가부장제 가정 안에서의 여성 등 길들이는 과정...